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문명주

文明柱

1895 ~ 1921. 3. 5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문명주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미상만주방면

관련 단체

  • · 보합단

포상 정보

  • · 애국장(2002)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02) 자료의 한계로 출신지는 확인할 수 없다. 1921년 일본 경찰과 교전 중 전사하였는데, 당시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37세로 1895년생으로 추정된다. 1920년부터 군자금 모집, 일본 군경과 친일파 처단, 적의 주요기관 폭파 등을 목적으로 평안북도 의주(義州)에서 조직된 보합단(普合團)에 가입하여 활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합단 결성 초기부터 참여했던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만주와 국내를 오가며 무기를 소지하고 다니면서 군자금 모집 활동을 벌였던 것으로 보인다. 보합단은 주로 군자금을 모아 무장투쟁을 위한 무기구입에 사용하거나 중국 상하이(上海)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독립자금으로 전달하였다. 또한 면사무소와 같은 관공서를 습격하여 파괴하거나 친일파를 처단하였다. 이러한 보합단의 일원으로서 평북 의주군 비현면(枇峴面) 조봉리(朝峰里)에서 일본 경찰 문치보(文致步)를 처단하였다. 이와 같은 적극적인 독립운동이 지속되자 1921년 3월 초 안동경무서와 신의주경찰서가 함께 안민산(安民山)을 중심으로 대흥동(大興洞)과 문봉동(文鳳洞) 등 이들의 근거지를 공격하였다. 이 과정에서 일본 경찰 10여 명과 교전을 벌였고, 그 과정에서 단원 1명과 함께 총에 맞아 사망하였다. 이 사건을 보도한 『동아일보』 기사에 보합단의 단장으로 보도하고 있다. 김중량(金仲亮)이 초기부터 계속해서 단장을 맡았던 것으로 보이나, 1920년 11월 시점에 부단장이었다는 기록도 있어 잠시 동안이나마 단장을 맡았을 가능성도 있다. 1921년 3월 5일 37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2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정다혜⋮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