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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善敬

善敬

1895. 10. 5 ~ 1993. 1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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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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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 송화(松禾)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황해도 송화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조선국민회
  • · 대한독립단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5년 10월 5일 황해도 송화군(松禾郡) 풍해면(豐海面) 성하리(城下里) 계원(桂園)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풍천(豐川)이며, 안창호(安昌鎬)와 함께 신민회 조직을 주도하고 박용만(朴容萬)과 함께 하와이에서 국민군단(國民軍團)을 창설하는 한편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군무총장과 국무총리를 역임한 독립운동가 노백린(盧伯麟)의 장남이다. 1923년 8월 10일 풍천(豊川)예배당에서 김정섭(金貞燮)의 차녀 김인선(金仁善)과 결혼하였다. 1910~20년대에 국내 비밀결사와 국외 무장투쟁 운동에 참여하였다. 평양 숭실학교를 졸업한 후 1917년 3월 숭실학교와 평양신학교의 재학생, 졸업생들과 함께 항일 비밀결사 조선국민회(朝鮮國民會)를 결성하였다. 조선국민회는 박용만이 주도한 하와이 대한인국민회와 대조선국민국단과 긴밀히 연계하며 서북지방을 중심으로 전국적 조직을 지향하였으며 군자금 모집과 무장투쟁을 도모하였다. 신식교육을 받은 청년·학생들을 중심으로 회장에 장일환(張日煥), 통신 겸 서기에 배민수(裵敏洙)·백세빈(白世彬) 등이 있었고, 이때 황해도 구역장을 맡아 활동하였다. 조선국민회가 중국과 간도 방면으로 확장을 꾀하면서 1917년 7월 간도지역과의 연락 통신을 위해 간도 퉁화현(通化縣) 삼원보(三源堡)로 파견되기도 하였다. 그러던 중 1918년 2월 일본 경찰에 조선국민회 활동이 발각되면서 장일환·배민수 등 구성원들과 함께 붙잡혔다. 1918년 퉁화현 삼원보로 다시 건너가 서간도 류허현(柳河顯)의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한 이후 1919년부터 대석탄학교(大石灘學校)에서 군사강습소를 경영한 것으로 전해진다. 1919년에 서간도 지역 만세운동에 참여하였고, 이후 만들어진 서간도 지역의 대표적인 무장독립운동단체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에도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1920년 백은선(白銀鮮)과 함께 독립운동을 위한 학생모집과 군자금 모금을 위해 국내로 잠입하려고 시도하던 중 안둥현(安東縣)에서 안동경무서 경찰 구니요시(國吉精保)에게 붙잡혔다. 이후 신의주형무소에서 3년간 옥고를 치렀다고 한다. 이러한 활동으로 1926년 일제당국의 ‘사상요시찰인(思想要視察人)’ 명단에 이름이 오르기도 하였다. 1945년 광복 후 육군사관학교 8기로 임관하였고, 1956년 대령으로 예편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정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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