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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금봉

朴今奉

1894. 1. 1 ~ 1971. 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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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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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논산(論山)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논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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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7)

관련 사건

  • · 논산군 강경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7) 1894년 1월 1일 충청남도 논산군(論山郡) 강경면(江景面) 황금정(黃金町)에서 태어났다. 일제가 창씨개명을 강요하자 길정광조(吉田光助)로 고쳤다. 1919년 논산군 강경면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1919년 당시 부여군(扶餘郡) 세도면(世道面)의 사립 창영학교(昌永學校)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다. 이 시기에 익산군(益山郡) 웅포면(熊浦面) 대붕암리(大鵬岩里)에서 군산 영명학교(永明學校) 학생 강금옥(姜今玉)으로부터 만세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엄창섭(嚴昌燮)이 창영학교에 만세시위를 전파하였다. 이 과정에서 고상준(高相俊)·추병갑(秋炳甲) 등과 함께 엄창섭의 의견에 찬동하여 3월 10일 강경면 읍내 장날 만세시위를 거행하고자 계획하였다. 이 만세시위에 사용할 태극기 제작은 엄창섭이 강경에서 백지 60장과 염분(染粉) 30전 어치를 구입하면서 속도가 붙게 되었다. 이를 가지고 김종갑(金鍾甲)·추성배(秋聖培) 등의 협조를 받아 태극기 200여 장을 만들었고, 서삼종(徐三鍾)이 가마니에 담아 강경면의 옥녀봉까지 운반하였다. 강경 옥녀봉은 강경 읍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곳으로 운동의 시작점으로서 더할 나위가 없는 지형이었다. 1919년 3월 10일 오후 3시 사람들이 옥녀봉에 모이자, 엄칠중·엄창섭 등과 함께 국기를 꺼내 나누어 갖고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어 동지들과 함께 봉우리를 내려와 시장을 향해 행진하며 국기를 나눠주고 조선독립만세를 목청껏 외쳤다. 삽시간에 약 300명의 사람들이 모여들어 읍내 각지를 행진하며 만세를 불렀다. 강경경찰서 일본 경찰이 출동해 시위대를 해산시키려고 하였지만, 군중들은 불응하며 만세를 계속 외쳤다. 일본 경찰이 재향군인 약 40명을 동원하여 주도 인사 14명을 붙잡자 시위대는 해산하였다. 이때 동지들과 함께 붙잡혀 1919년 4월 14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정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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