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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귀돌

朴貴乭

1893. 1. 23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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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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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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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17)

관련 사건

  • · 경성부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7) 1893년 1월 23일 서울 사직동(社稷洞)에서 태어났다. 1919년 만세운동 당시 동아연초회사(東亞煙草會社) 직공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1919년 3월 경성부 종교경찰관파출소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1919년 3월 12일 서울에서 ‘제2의 독립선언서’라고 불리는 「애원서(哀願書)」가 발표된 이후 만세시위에 적극 참여하였다. 「애원서」는 만세운동이 일어난 이후 문일평(文一平)이 안동교회(安洞敎會) 김백원(金百源) 목사를 만나 민족대표 명의의 독립선언서 후속으로서 준비한 문서였다. 문일평은 승동교회(勝洞敎會) 차상진(車相晋) 목사, 조형균(趙衡均)·문성호(文成鎬)·김극선(金極善)·백관형(白觀亨) 등과 함께 식어가는 만세운동의 불을 다시 지필 것에 대해 논의하였다. 3월 12일 보신각 앞에서 문일평은 「애원서」를 낭독하며, 조국의 독립과 3·1운동의 정당성을 역설하였다. 이는 일본 경찰의 엄중한 감시 하에 급격히 소강 상태로 접어든 서울 한복판의 만세시위운동을 자극하였으며, 시위운동의 열기는 다시 조성되었다. 3월 26일 밤 8시경 약 50명의 군중들을 이끌고 서울 종교경찰관파출소로 몰려가 파출소를 포위하고 조선독립만세를 부르면서 돌을 던졌다. 검은 두루마기를 입은 채로 사람들을 독려하여 주먹 절반만 한 돌과 기와 등을 파출소에 집중적으로 투석하게 하였다. 이를 막아서는 순사보 등에게 “밖으로 나가 만세를 부르라. 만약 외치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위협하며 만세 고창을 독려하였다. 그러던 중 파출소에서 경비를 서고 있던 경찰이 그와 시위대를 향해 칼을 빼들고 휘두르자 해산하였다가 3월 28일 일본 경찰에 붙잡혔다. 1919년 4월 2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소요로 징역 5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그 해 5월 23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 당하였다. 이에 다시 “나의 행위는 조선 민족으로서 정의(正義) 인도(人道)에 근거하여 의사 발동한 것으로 범죄가 아니므로 유죄 판결은 부당하며 복종할 수 없는 위법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상고하였으나, 같은 해 6월 21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치르고 이듬해 12월 21일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정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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