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寶培
寶培1910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8)
관련 사건
- · 광주학생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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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18) 평안남도 중화군(中和郡) 상원면(祥原面) 신읍리(新邑里)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910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1930년 당시 21세로 서울 인사동(仁寺洞)에 거주하며 태화여학교(泰和女學校) 2학년에 재학하고 있었고, 1월 15일 광주학생운동에 동조하는 동맹휴교에 참여하였다가 고초를 겪었다. 1929년 11월 전라남도 광주에서 시작된 학생시위가 확산되어 12월에는 서울에서도 중등학교 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연합시위가 벌어졌다. 시위 확산에 위기감을 느낀 조선총독부 학무 당국은 학생들을 해산시킬 목적으로 조기 방학을 결정하였다. 그러자 학생들은 개학 후 다시 운동을 벌이기로 약속하고 흩어졌다. 1930년 1월 각 학교가 개학하자 일본 경찰과 학교 당국은 시위를 막기 위해 삼엄한 경계를 펼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다시 운동을 일으키기 위해 시내 곳곳에 격문을 붙이는 등 활동에 나섰다. 개학 후 만세운동의 특징으로는 여학교들의 참여가 눈에 띄게 늘어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梨花女子高等普通學校)를 비롯하여 시내 13개 여학교가 가담하였다는 점이다. 이화여고보를 중심으로 한 학생들은 1월 9일 개학 당일부터 각 학교에 연락을 돌렸고, 1월 15일을 기해 만세운동을 벌이기로 약속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동급생인 정태이(鄭泰伊) 등과 함께 태화여학교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그날은 원래 시험이 있는 날이었으나 연기되어 오후 1시경 학생들이 귀가하기 시작하였다. 이때 주도 학생 20명은 이미 다른 학교 학생들과 약속한대로 교내에서 만세운동을 벌이기 시작하였다. 인접한 경성여자보육학교에서도 약 50명의 학생들이 만세운동을 시작하여 동료 학생들과 함께 여기에 합류하였다. 1930년 1월 15일 만세운동을 벌이던 중 태화여학교 학생 11명과 함께 일본 경찰에 붙잡혀 종로경찰서로 끌려갔다. 같은 날 종로경찰서에서 경찰범 처벌 규칙 제1조 제39호 위반으로 구류(拘留) 20일의 처분을 받고 유치장에 갇혔다. 1월 29일 동료 학생들과 함께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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