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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택수

邊澤秀

1887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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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변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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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남 삼수(三水)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남도 삼수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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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정의부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3)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3) 함경남도 삼수군(三水郡) 삼남면(三南面) 남풍리(南豊里)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929년 당시 43세인 것으로 보아 1887년생으로 추정된다. 만주의 항일 무장단체인 정의부(正義府) 부원을 도와 군자금을 모집하다 붙잡혔다. 1928년 5월부터 8월까지 친형 변영수(邊永秀)와 함께 삼남면 여운작리(如雲作里)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던 정의부 부원 이경자돌(李庚子乭)·박순희(朴順熙) 등을 도왔다. 그 해 11월 이경자돌이 다시 국내에 잠입할 때, 모젤식 권총 두 자루와 탄환 300여 발을 건네받고 이를 보관하였다. 이후 이경자돌은 관흥면(館興面) 개운성리(開雲城里)의 목재소 노동자로 근무하면서 만주에 있는 독립단원들과 연락을 주고받았고, 1929년 1월 중 목재소 서기 윤재원(尹在元)·윤치현(尹致鉉) 등에게 이해산(李海山)이라는 명의로 군자금을 요구하는 등의 활동을 펼쳤다. 1929년 1월 7일 만주 창바이현(長白縣) 15도구의 정의부 부원 박찬희(朴燦熙)·오성녀(吳姓女) 부부가 권총과 탄약 500발을 갖고 입국하여 활동 중 삼수군 호인면(好仁面)에서 일제 경찰에 붙잡히면서 조직망이 탄로 났다. 이 일에 연루되어 변영수·고주봉(高周鳳)·이관호(李寬浩) 등과 함께 붙잡혔다. 1929년 5월 22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징역 6월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이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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