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석붕
邊錫鵬1853. 11. 15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신한혁명당
포상 정보
- · 애족장(199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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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5) 1853년 11월 15일 경기도 파주군(坡州郡) 주내면(州內面) 능내동(陵內洞)에서 태어났다. 흥선대원군의 신망을 얻어 대원군 집정 당시 세력가로 알려졌다. 1895년 6월 군부(軍部) 육군 참위(參尉)에 임용되어 동학농민군 ‘진압’에 종사하여 정3품에 서임되었다. 1896년 7월경에 모종의 음모 사건에 연루되어 안규대(安奎大)·박준상(朴準相)·국기춘(鞠基春) 등과 경무청에 체포되어 종신 유형의 형을 받고 안규대와 전라남도 완도군(莞島郡) 고금도(古今島)에 유배(流配)되었다. 1907년 7월에 사면 받고 풀려났다. 일제 측 자료에 의하면 1910년 경술국치 당시 1천원을 은사금으로 받았던 것으로 되어 있다. 1915년 신한혁명당 활동에 참여하였다. 신한혁명당은 1915년 3월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신규식(申圭植)·박은식(朴殷植)·이상설(李相卨)·유동열(柳東說)·성낙형(成樂馨)·이춘일(李春日)·유홍열(劉鴻烈) 등이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이후 변화하는 국제정세를 독립운동의 기회로 활용하고자 조직한 독립운동단체였다. 조직은 본부와 지부로 구성하고 본부장에 이상설을 추대하고, 외교부장 성낙형, 교통부장 유동열, 재정부장 이춘일, 감독 박은식이 담당하였다. 지부는 상하이지부장 신규식, 창춘(長春)지부장 이동휘(李東輝), 한커우(漢口)지부장 김주원(金冑元), 회령(會寧)지부장 박정래(朴定來), 옌지(延吉)지부장 이동춘, 나남(羅南)지부장 강재후(姜載厚)가 선임되었다. 안둥현(安東縣)·서울·울산(蔚山)·회령·나남에 지부를 두었다. 신한혁명당 설립의 주목적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의 승리를 예견하고 전쟁 후 독일이 중국과 연횡으로 일본을 공격하면 일본은 고립될 것이므로 중국과 연합해 일본을 공격하는 독립운동 방략의 추진이었다. 광무황제(고종)를 신한혁명당의 당수로 추대하고 중국 정부와 신한혁명당의 한국 망명정부 사이에 군사동맹을 체결한다는 것이다. 이 동맹은 중국·미국·러시아 기타에 산재한 동지를 규합하고 다른 한편으로 군자(軍資)·병기(兵器) 등을 준비해야 하며 그 준비를 위해 독일 보증 아래 중국과 중한의방조약(中韓誼邦條約)이라 칭하는, 중국은 한국에서 혁명전쟁이 일어나면 군자 및 병기를 공급한다는 취지를 가진 밀약을 미래의 군주로서 추대할 광무황제의 위임을 받아 체결할 것을 결정하였다. 1914년 (음)12월 중 밀약 체결 임무를 맡은 외교부장 성낙형으로부터 국내 잠입을 위한 사전 준비 계획 설명과 동지를 규합할 뜻의 통신문을 전달받았다. 이 통신문을 받아 국내의 각 동지에게 보여 주었다. 1915년 5월 초 밀약 체결의 임무를 맡아 한커우지부장 김주원과 함께 국내로 잠입한 외교부장 성낙형이 서울로 들어오자 같은 해 7월 7일 이들과 접촉하여 당의 구체적인 계획을 전달받았다. 당시 국내에는 1915년 1월에 김사준(金思濬)을 회장으로 조직된 시회(詩會)를 거점으로 일부 동지들과 활동에 필요한 기반을 마련하고 있었다. 광무황제로부터 위임장을 받기 위한 계획의 실행을 위해 성낙형이 보낸 경각서를 활용하였다. 곧바로 시회의 구성원인 박봉래(朴鳳來)·심인택(沈仁澤) 등을 밀약체결을 위한 작전에 동참케 하였다. 성낙형과 김주원·심인택·정일영 등과 함께 모여 중한의방조약 체결에 필요한 위임장을 받을 방도를 논의하였다. 그 결과 광무황제에 직접 접근 방안, 이강 공을 통한 접근 방안, 구 양반 간에 동지 규합 방안 등으로 나누어 심인택·정일영·박봉래가 각각 주무자로 선정되었다. 심인택은 정일영과 상의하여 시회 회원으로 덕수궁과 연고가 있던 김승현을 적임자로 결정하였다. 1915년 7월 17일 심인택과 정일영은 김승현을 만나서 당의 계획을 알리고 이를 실행할 적임자를 물색하였다. 7월 24일 김승현은 광무황제를 모시던 덕수궁 내승(內丞)인 염덕신(廉德臣)을 포섭하여 광무황제에게 밀지 전달 작전에 동참하겠다는 승낙을 받았다. 계획이 진척되자 성낙형·심인택·김승현 등과 협의하여 “중국·독일이 일본을 연공(聯攻)하는 것이 대세”란 경각서의 취지를 기재한 문서를 7월 26일 오전 1시경 염덕신에게 교부하여 광무황제에게 전달함과 동시에 중한의방조약안의 체결계획에 관한 허락을 받아오도록 명령하였다. 명령을 하달받은 염덕신은 7월 26일 오후 12시경 덕수궁 함녕전(咸寧殿)에서 광무황제에게 당의 독립운동계획을 설명한 서찰과 관계 서류를 전했으며 곧이어 성낙형의 알현 허가도 받아냈다. 그러나 신한혁명당의 한중의방조약 체결 계획은 광무황제와의 만남이 성사되기 전에 발각되어 신한혁명당 동지들과 함께 붙잡혔다. 사건에 연루된 모든 당원들과 함께 재판에 회부되어 1915년 10월 30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강영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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