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최헌
白最憲1892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201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15) 황해도 안악군(安岳郡) 안악면(安岳面) 수산리(壽山里) 출신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921년 당시 30세인 것으로 보아 1892년생으로 추정된다. 친형으로 백최준(白最俊)이 있다. 활동 당시 거주지는 황해도 장연군(長淵郡) 장연면(長淵面) 읍남리(邑南里)이며, 음식점을 경영하고 있었다. 1920년 장연군 출신 최창한(崔昌翰)이 군자금을 모집하고 친일파를 처단할 목적으로 동지들을 규합할 때 참여하였다. 같은 해 1월 29일 장규황(張奎瑝)·(張奎煌)·장선봉(張仙鳳) 부자와 최창한·조정진(趙鼎鎭)·김병헌(金炳憲)·(金秉憲) 등과 함께 조정진의 집에서 비밀모임을 갖고 친일파 처단을 협의하였다. 자신의 집에서 주연(酒宴) 자리를 마련하고 장연경찰서에서 근무하는 하동일(河東一)과 특무순사 강규영(姜奎永, 강규형(姜奎亨))을 불러들여 처단하기로 결정하였다. 당일 밤 장규황의 지휘에 따라 조정진과 함께 수차례나 순사 강규영을 처단하기 위하여 조수민(趙壽敏)의 집에 가서 기다렸다. 그러나 강규영 등이 오지 않아 결국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계획을 중지하였다. 동지들과 여러 차례 비밀회의를 한 끝에 두 순사의 유인 장소를 읍내 조만흥(趙萬興)의 집으로 변경하였다. 1920년 1월 31일 밤 조만흥의 집에 주연 자리를 마련하고 조정진과 함께 두 순사의 행방을 찾아 나섰다. 읍내 길가에서 하동일을 발견하고 같이 놀러가자고 요청하였으나, 하동일이 거절하였다. 이에 대기하고 있던 최창한에게 급히 연락하였다. 최창한은 하동일을 부근 한증막으로 끌고 가서 권총으로 쏘았다. 그런데 총알이 하동일의 뺨을 스치고 지나가 부상을 입은 채 도망쳤다. 이와 같은 친일파 처단 활동을 벌이다가 일제 경찰에 붙잡혀 혹독한 고문을 받았다. 1921년 3월 26일 해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과 살인미수죄로 징역 10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1921년 6월 18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다시 상고하였지만, 1921년 9월 12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어 경성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전병무⋮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