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순화
白順和1903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군자금 모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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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1) 서울 사직동(社稷洞) 출신이다. 이명은 나순동(羅順同)이다. 1929년 당시 판결문에 37세로 되어 있어 1903년생으로 추정된다. 대한제국의 조폐국(造幣局) 등에서 근무하면서 20여 년간 인쇄업 기술자로 생활하였다. 일찍이 독립운동에 뜻을 두었는데, 동료 김성만(金成萬)과 함께 인쇄업에 종사했던 경력을 살려 활동하고자 하였다. 1926년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 등 만주 등지의 독립운동 단체에 군자금을 제공할 목적으로 중국 선양(瀋陽)에서 통용되던 지폐 10여만 원과 조선은행권(朝鮮銀行券) 5~6만 원을 위조하여 제공하였다. 1928년 유범규(劉範圭)·김성만·현기봉(玄基鳳) 등과 함께 독립운동 방법을 협의한 결과 대한민국 임시정부활동이 침체된 것은 자금 결핍 때문이므로 해외 동지들과 연락하여 군자금을 모집하자는 데 뜻을 같이하였다. 이를 주도했던 유범규는 간도에 원적(原籍)을 두고 해외 독립단과 연계하고 있던 인물로서, 상하이(上海)에서 남만주를 거쳐 국내로 들어와 1927년 1월부터 서울을 근거지로 활동에 착수하였다. 이들은 대규모의 군자금 모집과 권총·폭탄 등으로 고관 암살과 관공서 파괴를 기획하였다. 안국동(安國洞) 별궁(別宮) 뒤에 있던 유범규의 집을 연락 본부로 삼았으며, 제작한 지폐 등은 집 천정 속에 숨겨두었다. 이어 인쇄기계를 구입하여 임시정부 공채증서와 지폐를 인쇄해 자금을 확보하였다. 또한 독자적으로 폭탄을 제조해 관공서를 파괴하려 했으나 성능이 만족스럽지 않자 무기는 해외 독립운동 단체로부터 공급받기로 하였다. 또한 1928년 5월 하순 현기봉이 평남 개천(价川)에 파견되어 이전 임시정부 요원이던 김련(金鍊) 등과 함께 해외 연락 등을 밀의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5월 27일 유범규가 일제 경찰에 붙잡히고 그의 집에서 인쇄 기계·위조지폐 등이 발견되었으며 이후 서울과 개천에서 다수의 관련자가 붙잡혔다. 붙잡힐 당시 일제 당국은 ‘치안 방해’를 이유로 일체의 언론 게재를 금지했다가 그해 6월 15일 경기도 경찰부에서 처음으로 사건 내용을 발표하였다. 1929년 4월 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 강도 예비죄, 지폐 위조, 사기죄로 징역 4년을 받았다. 항소를 포기하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변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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