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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혁

朴承赫

1893. 11. 14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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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박승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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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남 단천(端川)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남도 단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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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단천자립단

포상 정보

  • · 애국장(2016)

관련 사건

  • · 단천자립단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16) 1893년 11월 14일 함경남도 단천군(端川郡) 수하면(水下面) 하농리(下農里)에서 태어났다. 1915년 (음)8월 서간도(西間島)에서 돌아온 최석희(崔錫熙)·이홍용(李洪容)의 권유로 강명환(姜明煥)·방주익(方周翼) 등과 함께 자립단(自立團)을 조직하기로 결의하였다. 이 단체는 단천지역 기독교 계통의 청년들이 국권 회복을 위한 교육계몽 활동과 혁명을 목적으로 조직한 비밀결사였다. 동지들과 함께 단천 읍내와 수하면·광천면(廣泉面) 등지에서 평소 경술국치(庚戌國恥)에 울분을 품고 있던 유창률(劉昌律)·이항근(李恒根)·이임배(李林倍)·이동섭(李東燮) 등을 규합하였다. 1915년 (음)9월 15일 8명의 동지와 단천군 파도면(波道面) 외문리(外門里)에서 모임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국권 회복을 위한 「자립단규칙서(自立團規則書)」 등을 작성하고 동지 규합에 나섰다. 같은 해 (음)11월 5일에는 수하면 하농리 장암촌(長岩村) 서당에서 비밀모임을 개최하였다. 여기에 참석하여 조직 방법과 운동노선을 확정한 뒤 자립단규칙서를 제정하고 임원을 선출하였다. 임원은 단장 방주익, 부단장 전성익(全性翊), 조직 강명환, 재정 심항기(沈恒基), 서기 최태형(崔泰亨) 등이었다. 이때 총무에 선임되었다. 자립단 창립 이후 먼저 군내 조직을 강화하는 한편 단천군에 인접한 이원(利原)·북청(北靑)·성진(城津)·길주(吉州)·풍산(豊山)·갑산(甲山) 등지로 조직을 확대하여 많은 단원을 모았다. 단원은 특별회비, 입단금 1원과 월 회비 20전을 내고, 이것을 단체의 기금으로 적립하도록 하였다. 이 기금으로 사업을 경영하여 그 이윤으로 청년자제를 교육하며, 기회를 보아 혁명을 일으키고자 하였다. 아울러 수하면에 ‘광복청년연성소(光復靑年練成所)’를 설치하고, 대한독립군에서 배속시킨 교관의 지도하에 독립군을 양성할 계획도 세웠다. 이와 같이 활동하다가 단원 19명과 함께 단천헌병분대에 붙잡혔다. 1916년 3월 14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를 제기하였으나, 그 해 4월 1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함흥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풀려난 후 만주 창바이현(長白縣)으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전개하다가 다시 일본 경찰에 붙잡혔다. 1922년 12월 22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과 강도로 징역 6년을 받았다. 1923년 2월 19일 경성복심법원에서 항소를 취하한 뒤 개성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이른바 ‘대사령’에 의해 4년 2월 24일로 감형되어, 1927년 5월 13일 풀려났다. 같은 해 12월 16일 단천농민연합회 정기대회에서 집행의장으로 선출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6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전병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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