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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묵

朴勝默

1922. 10. 1 ~ 1976. 5.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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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박승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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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금산(錦山)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금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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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시장친우계(진악동지회)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22년 10월 1일 전라북도 금산군(錦山郡, 현 충청남도 금산군) 금산읍(錦山邑) 중도리(中島里)에서 태어났다. 일제가 창씨개명을 강요하자 궁본승묵(宮本勝默)으로 고쳤다. 1939년 금산군 군북면(郡北面) 외부리(外釜里)에 위치한 심광보통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었으나 가정 형편으로 중퇴하였고, 같은 해 10월부터 형 박승인(朴勝仁, 宮本勝仁)이 경영하는 포목상에서 일하였다. 1940년 5월 11일 금산의 노동자로 18세 내외의 동지 7명과 더불어 친목 단체를 가장한 항일결사인 시장친우계(市場親友稧)를 조직하였다. 같은 해 7월 진악동지회(進樂同志會)로 명칭을 변경하고 항일운동을 본격화하였다. 진악동지회는 우선 일제의 지원병 강제모집에 반대하여 불합격자초운동(不合格自招運動)을 펴기로 계획하였다. 또한 중국에서 활동하는 한국독립군(韓國獨立軍)과 접선할 목적으로 회원인 최병무(崔秉茂)를 중국에 파견하였다. 파견에 필요한 여비 200원은 회원들이 40원씩 분담하여 마련하였다. 같은 해 9월 17일 오전 11시 문대식(文大植) 등 3인과 함께 금산군 남이면(南二面) 성곡리(城谷里) 소재 진악산(進樂山)에서 일반인에게 한국 독립의 민족의식을 고취하기 위한 실행에 나섰다. 당시 진락산에 있는 영천수굴(靈泉水屈)은 영험한 물이 나오고, 경치가 아름답다고 알려져 등산객들이 많았다. 이곳에서 회원들과 함께 진락산 중턱 등산 도로 옆에 병풍모양으로 우뚝 솟은 암석면에 붉은색과 푸른색의 페인트를 사용하여 대형 태극기를 그렸고, 그 왼쪽 아래 암석에 흰색 페인트로 ‘조선’이라고 크게 썼다. 그래서 태극기가 한국 본연의 형태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암시하였다. 또한 암석으로부터 북동쪽으로 250m 지점에 위치한 영천수굴에서 앞 석단(石壇) 위에 미리 만들어 둔 판자의 상부 중앙에 직경 1촌 크기의 태극기와 함께 아래에 ‘조선독립만세’라는 문자를 조각하고, 색을 칠해 세워두었다. 판자는 높이 8촌 5분·폭 2촌 4분의 크기로 중앙을 검은색으로 칠하였다. 또한 태극기는 붉은색과 파란색, 글씨는 흰색 페인트로 칠해 선명하게 보이게 하였다. 이러한 활동을 전개하다가 1941년 2월 17일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42년 5월 13일 전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박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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