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박봉락

朴鳳洛

미상 ~ 1934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박봉락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미상국내항일

관련 단체

  • · 신간회 성진지회
  • · 성진농민조합

포상 정보

  • · 애족장(1995)

관련 사건

  • · 신간회 성진지회
  • · 성진농민조합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5) 정확한 출생 시기나 출신 지역은 확인되지 않지만, 1920·30년대 함경북도 성진에서 계속 활동한 것으로 보아 이곳 출신으로 추정된다. 1923년 함북 성진군(城津郡) 학성면(鶴城面) 장현동(將峴洞)에서 유지 박승만(朴承萬)·방용갑(方容甲) 등과 함께 금주회(禁酒會)를 조직하는데 참여하였다. 1925년 2월에는 사립 장현학교 동우회 창립에 참여하여 체육부장을 맡는 등 지역에서 활동을 하였다. 1931년 1월 18일 함북도연맹 출옥자를 환영하기 위해 신간회 성진지회 동지들과 성진역(城津驛)으로 나갔다. 여기에서 제지하는 일제 경찰과 충돌하여 1,000여 명의 군중과 함께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에 성진경찰서의 검속에 걸려 15일 동안 구류되었다가, 1931년 2월 23일 풀려났다. 그 해 3월 13일 신간회 성진지회 제1회 대표자 대회에 참가하여 임시집행부의 집행위원장과 대의원에 선출되었다. 같은 해 5월 30일 성진군 업억동(業億洞) 북성(北城)농민조합회관에서 기존에 창립되어 있던 북성농민조합을 군조합(郡組合)으로 확장하기 위해 진행된 성진농민조합창립대회의 집행위원이 되었다. 1932년 1월 30일 동지들과 함께 학중면(鶴中面) 송하동(松下洞) 김원석(金元錫)의 집에 모여서 농민조합본부 임시통제위원회를 조직하고, 학성북부지부의 책임자가 되었다. 앞서 1931년 성진역에서의 시위운동 이후 이들의 활동을 주시하고 있던 일제 경찰은 좌익사상과 계급투쟁에 대한 선전 등 농민조합의 직접 행동이 표면화되자 검거를 시작하였고, 이로 인해 1932년 2월 성진경찰서에 붙잡혔다. 같은 해 9월 80여 명의 동지와 함께 청진검사국에 송치되었고, 미결구류 상태가 약 2년간 유지되었다. 그러다가 건강 상태가 나빠지자 1934년 2월 6일 보석으로 풀려났다. 이후 자택에서 요양하던 중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유신⋮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