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영
朴珉英1904. 2. 9 ~ 1938. 5. 9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고려공산청년회
- · 조선공산당
포상 정보
- · 애족장(2006)
관련 사건
- · 고려공산청년회
- · 조선공산당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6) 1904년 2월 9일 중국 지린성(吉林省) 옌지현(延吉縣) 소영자촌(小營子村)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는 박(朴)니키포르 알렉산드로비치(Пак Никифор Александрович)를 사용하였다. 모스크바 동방노력자공산대학을 졸업하였고, 러시아어를 능숙하게 구사하였다. 1926년 3월 권오설(權五卨)로부터 권유를 받아 고려공산청년회(高麗共産靑年會)와 조선공산당(朝鮮共産黨)에 각각 입회·입당하여, 경성부 제2야체이카에 배속되었다. 1926년 5월 3일에는 권오설·이지탁李(智鐸)과 함께 소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여기에서 6월 10일 순종(純宗)의 장례에 동지들과 만세운동을 추진하기로 하고, 권오설에게 총책을 맡겼다. 하지만 종로경찰서에서는 이전부터 의심되는 인물에 대한 조사와 검거를 하고 있었다. 결국 6월 6일 숨겨두었던 선전문이 발각되어 본격적으로 조선공산당에 대한 대규모 검거가 시작되자 붙잡혔다. 6월 19일 권오설 등 동지 13명과 함께 피의자로 지목되어 유치장에 감금되었다. 7월 2일 오후 서대문형무소로 옮겨졌고, 7월 12일 이른바 치안유지법과 출판법 위반 등으로 기소되었다. 1928년 2월 13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6월을 받았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고 1929년 9월 16일 출옥하였다. 1929년 11월 초순 김단야(金丹冶,본명 김태연(金泰淵))·김한(金翰) 등과 함께 ‘조선공산당조직준비위원회’를 결성하였다. 11월 27~28일 해외에서 입국한 인물들이 장기간 국내에 있는 것은 발각될 위험성이 크니, 당재건운동과 조직 활동은 이전부터 국내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에게 인계하고 계속 국외에서 운동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에 따라 김단야로부터 책임비서 자리를 넘겨받았다. 이후에도 사회주의 운동을 계속 하던 중 1930년 2월 김단야와 함께 러시아로 출국하였다. 일본 경찰 측에서는 이러한 상황을 알지 못하고 계속 수색하였다. 러시아에서 활동하다가 1938년 3월 13일 ‘반혁명 활동’ 혐의로 붙잡혀 총살형을 받았다. 같은 해 5월 9일 형 집행으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유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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