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권세
朴權世미상 ~ 1919. 3. 21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2014)
관련 사건
- · 산청군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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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2014) 자료의 한계로 출생일자는 확인할 수 없다. 경상남도 산청군(山淸郡) 신등면(新等面) 출신이다. 1919년 당시 산청군 단성면(丹城面) 남사리(南沙里)에 거주하였다. 1919년 3월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丹城面)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경남 산청 지역의 만세운동은 1919년 3월 19일부터 시작되었다. 기록상으로는 신등면·단성면·산청면 읍내 등을 중심으로 6차례의 만세시위가 일어난 것으로 확인된다. 만세시위가 시작된 계기는 다른 지역과 비슷하다. 고종 국상에 참여했던 유림들이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돌아와서 뜻있는 사람들과 함께 만세시위를 계획한 것이었다. 산청에서는 지역 유림 김영숙(金永淑)의 아들 김상준(金相峻)과 윤규현(尹圭鉉)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3월 21일 단성면 성내리시장 만세시위도 이들의 계획에 의한 것이었다. 이 만세시위는 3월 20일 신등면 단계리(丹溪里)에 위치한 시장에서 시작되었다. 김영숙·김상준 등은 약 500명 이상의 시위대를 이끌고 단계리시장 장날을 맞이하여 오후 2시경부터 거사를 진행하였다. 그러나 단성면 헌병주재소 헌병이 출동하여 총검을 휘두르며 야만적인 진압을 진행하였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체포하여 헌병대로 끌고 갔다. 여기에는 김영숙의 아들 김상준도 포함되었다. 분노한 군중과 김영숙·정태륜(鄭泰侖)·김상호(金相浩)·권숙린(權肅麟) 등 시위 주도자들은 이튿날인 21일 헌병주재소가 있는 단성면에서 만세시위를 계속하기로 결의하였다. 3월 21일은 단성면 성내리시장의 장날이었다. 3월 19일부터 매일 군내 각 지역에서 만세시위가 계속되었고, 일본군 헌병대의 무자비한 진압이 자행되면서 수많은 사람이 헌병대로 끌려갔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졌다. 이날 분노한 많은 군중과 함께 성내리시장으로 나갔다. 만세시위가 재개되었을 때, 이미 시위 군중은 약 1,000명을 헤아렸다. 시위대의 선두에서 맹렬히 만세시위를 전개하였고,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부르며 성내리시장을 행진하였다. 시위대와 함께 구속자의 석방을 요구하기 위해 주재소로 나아갔다. 시위 군중 일부는 돌과 몽둥이, 곤봉 등을 들고 있었다. 헌병주재소에는 인근 거창(居昌)의 일본군 헌병분견대와 진주(晉州)의 일본군 수비대로부터 파견된 증원 병력도 포진하고 있었다. 팽팽한 대치의 긴장감 속에 시위 군중을 대표하여 정태륜·김영숙 등이 전날 일본군 헌병대가 붙잡아 끌고 간 사람들의 석방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일본군 헌병대는 요구를 무시하고, 다시 정태륜 등 대표자들을 강제로 구금하였다. 이때 시위대의 맨 앞에서 이를 목도하고 분노하여 헌병주재소로 돌진하였다. 군중도 따라서 주재소를 향해 투석전을 전개하면서 몽둥이와 곤봉을 들고 주재소 안으로 진입하려고 하였다. 당황한 일본 헌병대는 시위 군중에게 무차별 발포를 감행하였다. 그 결과 현장에서 11명이 사망하였고,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이날 시위대를 이끌고 선두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다가 현장에서 피살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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