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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우

朴光又

1866. 4. 4 ~ 1940. 1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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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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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장성(長城)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장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장성군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2) 1866년 4월 4일 전라남도 장성군(長城郡) 북이면(北二面) 모현리(茅峴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한자를 달리하여 박광우(朴光宇)라고도 썼다. 1919년 만세운동 당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4월 3일과 4일 북이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4월 3일 북이면 모현리 평촌초당(平村草堂)에 전래 풍속인 화전회(花煎會)를 빙자하여, 신경식(申耕植)·유상순(柳相淳)·유상설(柳相卨) 등 마을 유지들이 모였다. 이때 유상설·고용석(高龍錫) 등이 일어나 조선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독립운동에 동조하여 만세시위를 전개하자고 주장하였다. 이들은 대한독립기(大韓獨立旗)라고 쓴 구한국기(舊韓國旗)를 만든 후 모여 든 마을 주민 200여 명과 함께 동면 네거리 시장 부근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행진하였다. 유상설·고용석·신경식·유상학(柳相學) 등이 일본 헌병대에 붙잡혔다. 다음날 4일 유상순·신태식·오상구(吳相九) 등과 합류하여 마을 주민 약 200여 명과 함께 만세를 부르며 헌병주재소로 행진하여 구속자 석방을 요구하였다. 일본 헌병대는 시위 군중을 해산시켰다. 이때 정병모(鄭秉模)·신태식 등과 함께 붙잡혔다. 이 일로 1919년 4월 28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그 해 5월 24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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