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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순

朴光順

1879. 2. 25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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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박광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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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안성(安城)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안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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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11)

관련 사건

  • · 안성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1) 1879년 2월 25일 경기도 안성군(安城郡) 읍내면(邑內面) 동리(東里, 현 안성시 안성1동 일대)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안성군 이죽면(二竹面) 죽산리(竹山里)에서 거주하였고, 차부(車夫)로 생계를 유지하였다. 1919년 4월 경기도 안성군 이죽면(二竹面)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죽산의 만세시위는 인근 읍내의 만세시위가 절정에 달한 3월 30일이 지나고 나서 며칠 후인 4월 2일 오전부터 4월 3일 새벽까지 이어졌다. 이죽면 장계리(長溪里)의 최창혁(崔昌赫)과 죽산리의 김용규(金容珪) 등 농민들이 먼저 나서서 시위를 계획하였고, 죽산공립보통학교 학생들과 연대하여 독립만세를 외쳤다. 오후 4시에 시위대가 일시 해산하였으나 밤 8시경 장원리(長院里)·매산리(梅山里)·용설리(龍舌里)·장계리 마을 주민들이 합세하면서 시위는 자정을 넘겼다. 이 과정에서 유춘삼(柳春三)·이강칠(李康七) 등과 함께 만세운동에 동참할 것을 결심하고 장원리 마을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설득하였다. 마을 주민 100여 명을 이끌고 이죽면 죽산경찰관주재소로 가서 이미 만세시위를 펼치고 있던 문재홍(文在弘)·이기훈(李起薰) 등이 이끄는 수백 명의 군중과 합세하여 만세운동을 벌였다. 이날 시위에서 조선약학교(朝鮮藥學校) 학생 이인영(李寅永)은 군중에게 “조선 독립 목적을 수행하려면 영구히 일본인과 동화해서는 안 된다”라는 내용이 기술된 「고문(告文)」이라는 제목의 문서를 배포하였다. 이 만세시위로 일본 경찰에 붙잡혀 1919년 6월 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그 해 6월 23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치르고 1921년 4월 24일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정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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