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관준
朴觀濬1873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5)
관련 사건
- · 중화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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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15) 평안남도 중화군(中和郡) 하도면(下道面) 대정리(大井里) 출신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873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1919년 만세운동 당시 47세로, 고향에서 농사를 짓고 있었다. 평안남도 중화군 중화면(中和面)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중화군 상원면(祥原面)의 만세운동은 천도교인과 기독교인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1919년 3월 1일 평양 천도교구에서 독립선언서가 전달되자, 3월 2일 천도교인이 중심이 되어 신읍리(新邑里)에 있는 상원경찰관주재소를 포위하였다. 때마침 상원을 순시 중이던 중화경찰서장도 주재소에 갇혀버렸다. 우편소장이 이 소식을 평양으로 전하자, 일본군 장교 이하 보병 11명 및 경관 2명이 급파되었다. 오후 4시 시위 군중이 해산되고 40여 명이 붙잡혔으며 부상자도 3명 발생하였다. 3월 3일에는 전날 시위에서 검거된 이후 천도교구실에 유치되어 있는 40여 명을 구출하려는 천도교인과 기독교인의 시위가 전개되었다. 천도교구실로 진입하려는 군중이 막아서는 감시 보병의 총을 빼앗는 등 물리적 충돌이 일어나, 10여 명이 부상당하였다. 오후 3시에는 신읍리 상원경찰관주재소를 공격하다가 물러났으며, 다시 오후 4시에 주재소로 몰려간 군중은 일본 군경과 백병전을 벌였다. 이처럼 충돌이 거세지자 평양으로부터 일본군 20여 명이 증원되기에 이르렀다. 3월 3일에만 32명이 붙잡히고, 43명이 부상을 당하였다. 이날의 시위로 붙잡혀 일자 미상일에 제1심 판결을 받고 항소하여 1919년 6월 10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다시 만국평화회의에서 주장된 식민지 국가의 평등권에 기반하여 조선 민족의 일원으로 부르짖은 독립만세운동의 정당성을 강조하며 상고하였으나, 그 해 7월 24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정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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