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공삼
朴公三1872. 10. 20 ~ 1958. 8. 1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5)
관련 사건
- · 화성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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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2005) 1872년 10월 20일 충남 청양군(靑陽郡) 화성면(化城面) 산정리(山亭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초에 일어난 화성면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청양 지역에서 만세운동은 다른 지역보다 늦은 1919년 4월 3일 운곡 미량리에서 시도되었으나, 일제에 사전 탐지되어 제지됨으로써 실행에 옮겨지지 못하였다. 그러나 4월 5일 정산과 화성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는 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전국 각지에서 만세운동이 전개되고 있음을 알고 조남희(趙南熙)와 독립만세를 부르기로 결의하고 태극기를 제작하는 등 사전 준비를 하였다. 4월 5일 산정리 정자동에 태극기 2기를 세워놓고 큰 종을 울리며 마을 주민 20여 명과 함께 독립 만세를 외쳤다. 다음날인 4월 6일 오전 10시 화성면사무소로 가서 면사무소 증축 공사를 하고 있던 박희석(朴喜錫) 등 대공(大工) 3명과 작업 인부 약 20명에게 “조선은 이미 독립하였으므로 증축 공사를 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며 공사를 하지 못하도록 제지하고 공사한 것을 파손하여 증축 공사를 중단시켰다. 이후 일본 헌병에게 붙잡혔다. 1919년 5월 9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김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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