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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계혁

朴桂赫

1866. 5. 12 ~ 1941. 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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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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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덕(盈德)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영덕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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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영덕군 영해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66년 5월 12일 경상북도 영덕군(盈德郡) 영해면(寧海面) 연평동(蓮坪洞)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영해면 성내동시장 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 1919년 3월 12일 김세영(金世榮)이 기독교회에서 구세군 참위(參尉)였던 권태원(權泰源)에게 전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만세운동을 설명하고, 영덕 읍내에서도 만세시위를 하자고 권유하였다. 이에 권태원과 병곡면(炳谷面) 송천동(松川洞) 교회 조사인 정규하(丁奎河)가 찬성하고 지역의 기독교회를 찾아가 여러 사람에게 함께 할 것을 권유하였다. 이들은 3월 18일 성내동 장날 시장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정하고 준비를 하며, 지역의 주요 양반가인 권(權)·남(南)·박(朴)·이(李)·백(白) 등의 문중에도 적극적인 참여를 요청하였다. 1919년 3월 18일 오후 1시경 약 2,000명의 군중이 영덕군 영해면 성내동시장에 모여들었는데, 이때 합류하였다. 정규하가 독립만세를 외치자 군중도 따라 외치며 시장 주위를 줄을 맞춰 걸었다. 기세가 오른 군중은 시장 근처의 영해경찰관주재소·영해공립보통학교·영해공립심상소학교·영해면사무소·영해우편소 등을 행진하였다. 이때 영해경찰관주재소에 침입해서 돌을 던졌다. 주재소 주임순사 스즈키 츠루지로(鈴木鶴次郞)가 해산 명령을 하자, 스즈키를 비롯해서 순사 야마구치 신이치(山口眞一), 순사보 진익조(陳益祚) 등을 제압하고 제복·제모·패검(佩劍) 등을 찢거나 파손하였다. 또한 순사들과 공립보통학교 훈도·생도들에게 독립만세를 외치라고 권유하였다. 주재소와 주변 여러 건물에 들어가 곤봉을 휘두르고, 기와 조각을 던져서 지붕과 기둥을 제외한 벽면 대부분과 유리창을 파손하다가 저녁에 잠시 해산하였다. 다음 날인 3월 19일에도 만세운동은 이어졌다. 다시 성내동시장으로 가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수백 명의 군중과 함께 행진하였다. 오후 5시경 대구에서 보병 제80연대가 도착해서 실탄을 발사하며 주도자를 검거하였는데, 이때 붙잡혔다. 1919년 6월 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소요, 공무집행방해, 건조물손괴, 기물손괴, 공문서훼기, 상해, 보안법 위반 등으로 징역 2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지만, 그 해 9월 3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유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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