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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주

朴京柱

1896. 5. 13 ~ 1938. 1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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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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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광주(光州)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광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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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광주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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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96년 5월 13일 전라남도 광주군(光州郡) 송정면(松汀面) 선암리(仙岩里, 현 광주광역시 광산구 선암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중·하순 자신의 집에서 독립선언서를 등사하는 등 광주 읍내 부동교(不動橋) 아래 작은 장터 만세운동에 직접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10일 작은 장터 만세운동은 김복현(金福鉉)·김강(金剛)·최병준(崔丙浚)·한길상(韓吉祥)·최한영(崔漢泳) 등이 장날을 기해 벌인 것이었다. 당시 광주 지역에서는 도쿄(東京) 유학생이었던 정광호(鄭光好)를 통해 2·8독립선언이 알려졌고, 만세시위를 주도한 인물들은 당시의 독립선언서를 등사해 두는 등 일찍부터 만세운동의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었다. 3월 10일, 작은 장터에 모인 기독교인과 학생 등 약 1,000명의 사람들은 태극기를 들고 독립만세를 부르며 만세운동을 시작하였다. 시위 대열에 더욱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자 장터를 나와 읍내로 행진하였으며, 저녁까지 만세시위를 지속하였다. 그 날 저녁 경찰서 앞에서 일본 경찰과 헌병들이 시위대를 해산시키며 주도자들을 붙잡았다. 이어 3월 14일 작은 장터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던 김태열(金泰烈)을 만났다. 김태열은 3월 10일의 만세운동이 충분하지 않았으므로, 다시 독립선언서를 인쇄, 배포하여 독립사상을 고취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김태열로부터 선언서 인쇄 계획을 듣고 자신의 집에서 등사하는 것을 승낙하였다. 이는 자신의 집이 광주 읍내와 다소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어 등사 장소로는 적합하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등사를 위해 광주 읍내로 사람을 보내 용지를 구입해 오도록 하였다. 김태열은 최한영의 집에서 등사기를 가져오는 한편 범윤두(范潤斗)와 김용규(金容奎)를 만나 인쇄에 동참시켰다. 3월 17~18일 자신의 집에서 범윤두·김용규와 함께 제2의 독립운동을 개시하고 광주 부근에 인쇄물을 배포하여 독립사상을 고취시킬 목적으로 독립선언서 약 1,500장·경고문 1,500장·독립가 약 500장 등 총 6,000장의 인쇄물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 일이 일제 경찰에 탐지되면서 붙잡혔다. 1919년 6월 16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과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3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여, 9월 15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으로 감형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이상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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