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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용

朴敬用

1892. 10. 26 ~ 1961. 6.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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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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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함안(咸安)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함안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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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6)

관련 사건

  • · 함안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6) 1892년 10월 26일 경상남도 함안군(咸安郡) 함안면(咸安面) 북촌동(北村洞)에서 태어났다. 자(字)는 영순(永順)이고, 족보에는 이름이 경현(敬鉉)으로 기재되어 있다. 1919년 3월 19일 함안군 함안면 읍내 장날에 전개된 독립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 같은 마을의 김학곤(金學坤)·조용규(趙龍奎)·이규석(李圭錫)·한관열(韓灌烈)·한일동(韓一東)·서찬두(徐贊斗) 등과 함께 독립운동의 기회를 엿보고 있던 중 서울의 만세운동의 소식이 전해졌다. 이때 고종의 장례에 참석하고 돌아온 조한휘(趙漢輝)·이찬영(李讚榮)·한관열(韓灌烈) 등과 함께 지역에서 만세운동을 계획하고, 함안 장날인 3월 19일에 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하였다. 준비 과정에서 사람들을 동원하는 역할을 맡았다. 거사 당일 만세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은 비봉산에서 고천제(告天祭)를 지내고, 태평루에서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들고 독립선언식을 마쳤다. 이후 읍내로 들어와 주재소, 군청, 등기소 등으로 이동하면서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행진하였다. 이 과정에서 시위대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더욱 늘어났다. 불어난 시위대는 주재소에 돌을 던져 공격하였고, 군청 앞에서도 만세를 불렀다. 만세시위가 점차 고조되자, 경찰과 마산 주둔 중포병대대 병력 등이 출동해 시위대를 무력으로 강제 해산시켰다. 이후 일제 경찰과 군인들은 만세운동 주도자들을 붙잡기 시작하였는데, 이때 동지들과 함께 붙잡혔다. 1919년 5월 2일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에서 이른바 소요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이상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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