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홍식
閔弘植1881. 10. 25 ~ 1951. 4. 17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평산군 세곡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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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81년 10월 25일 황해도 평산군(平山郡) 세곡면(細谷面) 진보리(眞寶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대금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평산 지역에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평산군의 만세운동은 천도교인들을 중심으로 1919년 3월 7일 평산군 읍내 장터에서 시작되었다. 8일에도 만세시위가 재개되었는데, 모두 헌병들의 발포로 인해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침잠해 있던 만세시위는 3월말부터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3월 30일 평산군 읍내 은담리(隱潭里)와 빙고리(氷庫里)에 독립만세 전단과 태극기 모형이 붙었고, 3월 31일과 4월 1일에는 금암면(金岩面) 한포리(汗浦里)와 인산면(麟山面) 기린리(麒麟里)에서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이어 4월 2일 평산면과 세곡면 누천리(漏川里), 3일 누천리와 문무면(文武面) 문구리(文區里), 4일 보산면(寶山面) 남천리(南川里)와 두무리(斗武里), 7일 마산면(馬山面) 주답리(注畓里)와 보산면 운천리(雲川里), 적암면(積岩面) 온정리(溫井里) 등 평산군 전 지역으로 확산되었다. 세곡면 누천리의 장날인 4월 2일, 누천시장에서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이 때 이원영(李元永)·신세균(申世均)·최헌영(崔憲永) 등과 함께 시위를 주도하였다. 만세시위가 있기 며칠 전 면사무소와 주재소 등 관청에 태극기가 게양되는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에 감시가 삼엄한 상태였지만, 장꾼들이 호응하면서 시위대의 규모는 700여 명까지 늘어났다. 시위대는 독립만세를 외치며 누천헌병분견소로 향하였다. 헌병들이 시위대를 강제로 해산시키려고 하자 이에 맞서 시위대는 분견소의 유리창을 부수고 분견소장의 얼굴을 구타하였다. 이후 헌병들의 무차별 발포가 이어졌고, 현장에서 4명의 사망자와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이 일로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어 제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아 항소하여 1919년 7월 26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이른바 소요와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3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다시 상고하였지만, 그 해 10월 2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고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박종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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