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창식
閔昌植1888. 12. 28 ~ 1948. 8. 1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9)
관련 사건
- · 김포군 월곶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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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9) 1888년 12월 28일 경기도 김포군(金浦郡) 월곶면(月串面) 조강리(祖江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32세였으며,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1919년 3월 28일 김포군 월곶면 조강리와 갈산리(葛山里) 일대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월곶면 일대의 만세운동은 서울로 유학하다가 1919년 만세운동에 참여했던 양촌면(陽村面) 누산리(樓山里)의 박충서(朴忠緖)가 촉발하였다. 박충서는 경성제1고등보통학교 3학년생으로 3월 1일 탑골공원의 시위에 참여한 이래 종로, 덕수궁 대한문, 각국 영사관 등지를 순회하면서 시위하여 일본 경찰이 그의 부친인 훈장 박승혁에게 아들의 귀향을 강권할 정도로 일본 경찰의 주목을 받는 인물이었다. 3월 22일 양촌면 장날에 박충서가 박승각(朴勝珏)·박승만(朴勝萬)·안성환(安聖煥)·김태순(金泰順) 등과 접촉하며 만세시위를 전개해 나갔는데, 바로 이 장날의 시위에 함께 참석한 것을 계기로 조강리 만세시위 운동을 일으킬 결심을 하게 되었다. 월곶면 고양리(高陽里)에서는 성태영(成泰永)이, 군하리(郡下里)에서는 백일환(白日煥) 등이 만세시위를 추진해 나간 것 또한 3월 22일의 양촌면 장날 시위가 그 직접적 계기가 되었다. 이 날 시위에 참석하고 조강리로 돌아와 최우석(崔禹錫)·정인교(鄭仁敎)·윤종근(尹鍾根)·윤영규(尹寧圭)·박용우(朴容雨) 등 지인들과 함께 3월 28일에 만세시위를 일으킬 것을 결의하였다. 이에 각자 동리의 주민들을 규합하며 거사를 준비하였다. 3월 28일 규합된 십 수 명의 사람들과 함께 군하리의 뒷산인 함반산(含飯山)에 올라 횃불을 올리며 대한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외쳤다. 김포의 만세운동은 특히 횃불과 봉화를 이용한 경우가 많은데 지리적으로 낮은 구릉지대와 평야로 이루어져 있어 횃불시위가 더욱 효과를 발휘하였다. 3월 25일의 교촌면 시위, 3월 30일의 군내면, 촌면의 시위는 모두 횃불을 이용한 시위였다. 함반산 횃불 시위 이후 같은 일을 계속할 것을 계획하다가 붙잡혀, 1919년 6월 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9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정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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