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하
朴炳夏1847. 12. 28 ~ 1910. 9. 22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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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5) 1847년 (음)12월 28일 전라북도 고창군(高敞郡) 흥덕면(興德面) 백운리(白雲里, 현 운양리)에서 아버지 박명수(朴明秀)와 어머니 김해 김씨金(海) 金(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자는 문혁(文赫), 호는 가헌(可軒) 이다. 11세부터 형 박병신(朴炳臣)과 함께 할아버지 박준민(朴準珉)에게 학문을 배웠다. 1876년 부친상을 당하자 밤낮으로 애통해 하며 죽을 지경에 이를 정도로 효심이 깊었다고 한다. 1899년 내장사(內藏司) 수륜과(水輪課) 주사(主事)에 임명되었다. 1893년 한말 대학자이자 우국지사인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의 문하로 들어가 스승으로 모시고 학문을 익혔다. 이후 1903년 간재(艮齋) 전우(田愚)를 스승으로 삼았다. 이러한 스승의 영향과 학문적 경향으로 1910년 8월 경술국치(庚戌國恥) 소식을 접하자 “오랑캐들이 우리나라의 강토를 빼앗았는데 어찌 오랑캐들의 노예가 되어 복종하여 섬길 수 있겠는가. 그들에게 욕을 받으며 살기 보다는 몸을 깨끗이 하여 죽는 것이 낫다”고 하며 죽음을 결심하였다. 그리고 동지들에게 이별을 고하는 편지를 쓰고 단식에 돌입하였다. 가족들이 음식을 가져다주자 “경서를 안고 통곡하며 산에 들어가 굶어 죽는다(抱經通哭 入山枯死)”라는 글귀로 자신의 뜻을 밝히며 단식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단식 8일 만인 1910년 9월 22일 끝내 사망하였다. 유고로 1958년 장손 박봉규(朴鳳圭)와 권순명(權純命) 등이 편집·간행한 『가헌집(可軒集)』이 있다. 총 3권 1책으로 구성되었으며 이중 스승 전우에게 보낸 서간문 「상간재전선생(上艮齋田先生)」에서 순국의 뜻을 밝히고 있다. 호 ‘가헌(可軒)’도 전우가 지어준 것으로 ‘성리학에 의한 전형적인 인격형성과 학문의 성취를 바란다’는 뜻이다. 한말 우국지사들의 행적을 기록한 『한말충의록(韓末忠義錄)』에 “효성과 학문으로 여러 차례 천거되었던 박병하가 경술국치의 변고에 분통하여 한번 죽음으로써 500년 조정에 보답하였다”라고 수록되어 죽음으로 충절을 다했음을 전하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박경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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