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무조
朴武祚1859. 2. 29 ~ 1917. 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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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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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59년 (음)2월 29일 경상북도 군위군(軍威郡) 우보변(友保面) 호포리(虎浦里)에서 아버지 박현원(朴顯原)과 어머니 전주 이씨(全州) 李(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월성(月城)이며, 자는 성언(聖彦), 호는 무호(无號), 이명은 박능일(朴能一)이다. 자라면서 가문의 할아버지인 남서공(楠西公) 박춘립(朴春立) 문하에서 학문을 배웠다. 평소 효심이 지극하였고, 나라의 위태로움에 걱정을 많이 하였다고 한다. 1910년 경술국치(庚戌國恥)를 당하자 북쪽을 향해 통곡하고 일제의 침략에 의분을 참지 못하였다. 그리고 1909년부터 시행된 민적법(民籍法)에 의해 일제가 강제로 민적에 등록하게 하자 이를 거부하며 통한을 품고 살았다. 이 때문에 고향에 계속 살지 못하고 1910년 가족을 이끌고 경북 예안군禮(安郡) 의동면(宜東面) 온혜리(溫惠里, 현 안동시 도산면)로 이주하였다. 이후 1914년 강원도 영월로 거처를 옮겼고, 1917년 다시 경북 풍기군(豊基郡) 천전(泉田)으로 옮기는 등 여러 지역을 전전하며 숨어 지내면서 일제의 민적에 끝내 등록하지 않았다. 1917년 7월 동생 박응조(朴應祚)에게 자결의 뜻을 편지로 남기고 경북 연일군(延日郡) 우목리(牛目里)(현 포항시 북구 흥해읍)로 향하였다. 그곳 김진우金(振宇)의 집에서 하룻밤 머물렀다. 이때 김진우에게 중국 진(秦)나라 때 바다에 빠져 죽은 노중련魯(仲連)의 고사를 들어 바다에 투신할 뜻을 밝혔다. 7월 20일 바닷가에 도착하여 주변 바위에 “살아서 원수를 섬기느니 바다에 빠져 죽는 것보다 못하다. 조선의 숨어 지내는 박능일(與基事讐而生 不若蹈海而死 朝鮮逸民朴能一)”이라는 글자를 남기고 바다에 몸을 던져 자결하였다. 스스로 칭한 ‘능일(能一)’이라는 이름은 ‘천백 가지에 능하지 못해도 한 번 죽는 데에는 능하다’는 뜻으로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기자 죽음으로 그 치욕을 갚고자 함이었다. 광복 후 1946년 5월 지역 유림들이 자결한 바닷가 근처(현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우묵리 죽천초등학교 북동쪽)에 ‘조선일민박공도해비(朝鮮逸民朴公蹈海碑)’를 세워 추앙하고 있다. 고향인 군위에는 ‘무호 박무조선생 표충비’(현 군위군 우보면 나호리 942-1)가 세워져 항일정신을 기리고 있다. 또한 우국지사인 김홍락金(鴻洛)의 문집 『모계집(某溪集)』에 묘갈명(墓碣銘)이 수록되었고, 지역 주민들의 입을 통해 ‘일제에 항거한 충신 박무조’ 설화로 구전되면서 세대를 이어 행적이 전해지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박경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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