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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오봉

朴五鳳

1908. 4. 7 ~ 1949. 4.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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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박오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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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무안(務安)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무안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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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광주청년동맹
  • · 광주청년회
  • · 인쇄공조합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광주청년동맹
  • · 광주청년회
  • · 인쇄공조합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08년 4월 7일 전라남도 무안군(務安郡) 청계면(淸溪面) 청계리(淸溪里)에서 태어났다. 본적은 광주(光州) 금남로(錦南路)이다. 1923년 광주일보사(光州日報社) 직공, 1926년 봄 광주 서광산정(西光山町) 소재 타니구치(谷口)인쇄소 직공으로 일하면서 광주청년동맹(光州靑年同盟) 집행위원과 광주청년회(光州靑年會), 인쇄공조합원(印刷工組合員)으로 활동하였다. 1929년 5월 초 광주소년동맹에서 어린이날을 맞아 행렬을 준비하고 격문을 배포하다가 강석원(姜錫元)·서재익(徐在益)·문용(文鏞)과 함께 광주경찰서에 붙잡혔다가 5월 10일 석방되었다.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항일운동이 일어나자 다음날 4일 광주의 중등학교들이 임시휴교에 들어가고 대대적인 검거가 시작되었다. 이때 집에서 전남청년연맹의 집행위원 국채진(鞠採鎭)·강석원·나승규(羅承奎)·장석천(張錫天)·장재성(張載性) 등과 함께 일제 경찰의 한국인 학생들에 대한 편파적 체포에 항거하여 재봉기하고자 하였다. 11월 6일 장재성이 “검거자 구출, 교내 경찰관 침입 반대, 조선인 본위 교육제도 확립, 식민지 노예교육 철폐” 등의 내용을 포함한 원고를 작성하였다. 시위 날짜는 두 차례의 임시휴교 끝에 학생들이 등교하는 11월 11일로 계획되었다가 다시 11월 12일로 변경되었다. 11월 10일 광주읍 수기옥정(須奇屋町) 소재 조선만(趙善萬, 광주청년회·광주인쇄직공조합·광주소년동맹의 간부)의 집에서 강석원·나승규·장석천과 만나 시위운동을 의논하였다. “조선 민중이여 궐기하자, 청년 대중이여 죽음을 초월하여 투쟁하자, 검거자를 구출하자, 재향군군인단의 비상소집에 절대 반대하자, 소방대·청년단을 즉시 해산하라” 등 장석천이 작성한 원고를 전단으로 인쇄하여 살포하면서 시위운동을 강행하자고 결정하였다. 그리고 시위운동을 전국으로 확산시키기 위해 각자의 역할을 분담했는데, 이때 인쇄직공 등 노동자들의 선동을 담당하였다. 한편 오쾌일(吳快一) 등은 4종의 선전 전단 4,000부를 인쇄하였는데 3종은 학생, 1종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일반인에게 배포된 격문은 일본인 사회의 반응에 대항하는 성격이 강했고, 미온적 태도의 학부형위원회를 분쇄하고 전체 학부형대회의 소집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광주학생항일운동 제2차 시위를 주도하다가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30년 10월 27일 광주지방법원서 이른바 보안법과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항소하였으나, 1931년 6월 13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풀려난 후 1931년 8월 1일 광주읍내 각 공장에 격문을 살포한 사건이 일어나자 8월 3일 강석구·김갑수(金甲洙)·조규채(曺圭彩) 등과 함께 검거되었다가 20일에 석방되었고, 1933년 10월 18일에도 강영석(姜永錫) 등 5~6명의 청년과 함께 검거되는 등 계속하여 일제의 감시를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윤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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