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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혁

朴俊赫

1899. 8. 9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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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박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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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남 단천(端川)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남도 단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흥업단
  • · 광정단

포상 정보

  • · 애국장(201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11) 1899년 8월 9일 함경남도 단천군(端川郡) 수정면(水正面) 고성리(古城里)에서 태어났다. 7살이 되던 해 부모를 따라 서간도(西間島) 창바이현(長白縣)으로 이주해 16도구(道溝) 신창동(新昌洞)에 거주하였다. 광정단 유격대원으로 활동하였다. 1919년 푸쑹현(撫松縣)에 설립된 흥업단(興業團)에 입단하였다. 흥업단은 대종교인들이 중심이 되어 설립한 독립군단으로, 소속 독립군들을 북간도(北間島) 왕칭현(汪淸縣)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로 보내 군사교육을 시켰다. 1922년 흥업단이 대진단(大震團)·태극단(太極團) 등과 연합하여 광정단(匡正團)으로 출범할 때 참여하였다. 광정단에서 군사부(軍事部 )소속의 상등병(上等兵)에 임명되어 창바이현 병영에서 근무하였다. 1922년 9월 소대장 강승경(姜承京)이 인솔하는 유격대의 일원이 되었다. 광정단 유격대는 30여 명의 인원으로 편성되었고, 장총 35정, 권총 5정과 대원 1인당 20~50발의 탄환이 지급된 본격적인 전투부대였다. 유격대 소속으로 압록강을 건너 함경남도 삼수군(三水郡)으로 진입하였다. 9월 25일 새벽 호인면(好人面) 영성리(嶺城里)까지 진입하여 새벽 4시 경찰주재소를 기습 공격하여 일제 경찰을 처단하고 군수품을 수집한 후 본대로 귀환하였다. 1924년 10월 6일 단장 윤덕보(尹德甫)의 명령을 받고 김성연(金成淵)이 지휘하는 26명으로 구성된 새로운 유격대에 가담하였다. 삼수군(三水郡) 경찰주재소를 공격하여 일제 경찰을 처단하고 무기와 군수품을 수집한 뒤 주재소에 불을 질러 전소시켰다. 이후 복귀하는 과정에서 산간 오지로 피신하며 길을 잡았으나 곳곳에 폭설이 내려 신속히 이동하기 어려웠다. 결국 일제 경찰의 추격을 받아 붙잡혔다. 1927년 2월 2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처벌에 관한 건’ 위반으로 징역 10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채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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