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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섭

申龍涉

1897 ~ 1924. 9.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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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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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남 평원(平原)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남도 평원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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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통의부
  • · 참의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5) 평안남도 평원군(平原郡) 검산면(檢山面)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897년생으로 추정된다. 이명은 신용섭(申龍燮)이다. 1922년 무렵 남만주(南滿洲)로 망명해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의 대원이 되었으나, 자료의 한계로 그 과정은 확인할 수 없다. 통의부는 1922년 8월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광복군총영(光復軍總營)·관전동로한교민단(寬甸東路韓僑民團) 등 남만주 17개 독립운동 단체와 독립군단(獨立軍團)들이 통합해 성립되었다. 이들 여러 단체가 통합한 목적은 1920년 10월부터 일본군에 의해 자행된 경신참변(庚申慘變)(또는 간도참변[(間島慘變)])에 의해 파괴된 서북간도의 한인사회와 독립군기지를 재건하고, 항일 독립전쟁을 이어가기 위해서였다. 1919년 만세운동 후 성립된 수십 개의 독립군단(獨立軍團) 소속 독립군들의 국내진입전으로 식민지 한국을 지배하는데 어려움을 겪게 된 일제는 약 2만 명의 일본군을 서북간도(西北間島)로 침입시켰다. 최신식 무기로 무장한 일본군 대병력은 1920년 10월부터 약 6개월간 한인사회와 독립군기지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3천 7백 명에 가까운 한인들을 살해하였다. 이 같은 현실을 힘을 합해 복원시키기기 위해 성립된 것이 통의부였다. 통의부는 어려운 상황을 극복해야 할 목표를 가지고 탄생한 단체였기에, 한인사회 재건을 이끌 자치조직과 무장활동을 수행할 군사조직 등 두 부류의 기구를 편성하였다. 이들 중 군사 조직인 의용군 지휘관 중 일부가 통의부를 이탈할 움직임을 보였다. 1923년 말 의용군 제1중대장인 채찬(蔡燦)과 박응백(朴應伯) 등은 상하이(上海)로 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인사들과 만주에 무장활동만 수행할 정부 산하의 군사조직을 편성하기로 합의하였다. 그리고 돌아와 통의부 의용군 제1·2·3·5 중대와 유격대, 독립소대(獨立小隊)를 분리시켜 임시정부 육군주만참의부(陸軍駐灣參議部)를 성립시켰다. 이 같이 성립한 참의부는 제1중대부터 5중대까지 5개 중대와 독립소대·훈련대 등 무장조직을 철저하게 갖춘 독립군단이었다. 초대 참의장은 제1중대장을 겸한 채찬이 선임되었다. 그 외 조직은 이주 한인들의 민의를 반영하기 위한 중앙의회(中央議會)와 독립군을 지원하고 한인을 위한 행정사항을 처리할 민사부(民事部)뿐이었다. 항일 무장활동에 중점을 두고 조직한 편제였던 것이다. 따라서 본부도 국내진입이 쉬운 압록강변의 지안현(輯安縣)에 설치되었고, 각 중대들도 주변의 환런(桓仁)·싱징(興京)·퉁화현(通化縣) 등에 배치되었다. 통의부에 이어 참의부 소속이 되어 제2중대 2소대 2분대에 배치되었다. 성립되고 얼마 되지 않은 1924년 8월 하순, 출정대장 이의준(李義俊, 일명 韓權雄)의 지휘 하에 허영관(許永官)·김여하(金麗河)·박봉호(朴奉浩)·장운성(張雲成)·배상대(裵相大) 등과 유격대의 일원이 되었다. 이들 유격대는 8월 25일, 압록강을 건너 국내로 진입하였다. 주재소를 비롯한 일제의 침략기관을 공격할 목적으로 강을 건넌 유격대는 얼마 진군하지 못하고 남동(南洞)이라는 지역에서 일본군 수비대를 만났다. 유격대는 사력을 다해 전투를 벌여 일본군 1명을 전사시키고, 1명을 부상시켰다. 양측이 전투를 벌이는 동안 총성을 들은 일본군 응원대가 몰려왔다. 수적으로 불리해지자 유격대는 할 수 없이 진군을 멈추고 다시 강을 넘어 본부로 귀대하고 말았다. 그 해 9월 초, 제2분대장인 김창균(金昌均)이 편성한 유격대에 김창옥(金昌玉)·이기섭(李基涉)·한영환(韓永煥)·김영하(金永河) 등과 함께 대원이 되었다. 9월 6일, 평북 위원군(渭原郡)으로 진입한 유격대는 작전지역을 향해 가던 중 봉산면(鳳山面) 고각동(古閣洞)에서 수십 명으로 구성된 일제 경찰대와 마주쳤다. 위원군은 남만주에 근거지를 가진 독립군단의 독립군들이 국내로 진입하는 주된 통로이자 활동지였다. 따라서 일제는 수시로 경찰대를 편성해 수색작업을 펼쳤다. 우선 수적으로도 많은 차이가 나 대등한 전투가 이루어질 수 없었다. 하지만 유격대는 사력을 다해 전투를 펼쳤다. 엄폐물을 이용하며 일제 경찰대를 물리치려 노력했지만 상황은 어려웠다. 결국 이 전투에서 전사하였고, 나머지 대원들은 어렵게 포위망을 뚫고 본부로 귀대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채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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