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병헌
孫炳憲1870 ~ 1946. 2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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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경상북도 영천군(永川郡) 영천읍(永川邑) 청통리(淸通里) 출신이다. 일제 측 기록에 따르면 1870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1919년 중국으로 건너가 환런현(桓仁縣) 남구(南區) 마권자(馬圈子)에서 거주하였다. 1919년 7월 환런현 황도천(橫道川)에서 손극장(孫克章)·독고욱(獨孤旭)·이천민(李天民) 등과 함께 각처의 청년들을 규합하여 한교공회(韓僑公會)를 조직하였다. 한교공회는 본부를 환런현 마권자에 두고 각처에 지부를 설치하였는데, 특무부장 이천민, 재무부장 윤세용(尹世茸), 검무부장 독고욱, 청년부장 사병희(史秉熙), 외무위원 김창천(金蒼天)으로 조직되었고, 이때 서무부장을 맡았다. 한교공회는 일제의 침략 기관을 습격·파괴하는 한편 일제 밀정을 적발·처단하는 등의 무장 투쟁을 전개하였다. 적의 앞잡이 노릇을 하던 홍승국(洪承國) 등 이적 행위자들을 설득시켜 귀국하도록 하였으며, 중국 토군(土軍)과 결탁하여 독립운동가를 붙잡아 살해하는 등 행패가 극심했던 백토벌(白討伐)이라는 별명을 가진 일제 밀정을 처단하기도 하였다. 1922년 8월 30일 환런현 마권자에서 군정서(軍政署)·대한독립군(大韓獨立軍)·관전동로한교민단(寬甸東路韓僑民團)·대한광복군영(大韓光復軍營)·대한정의군영(大韓正義軍營)·대한광복군총영(大韓光復軍總營)·평북독판부(平北督辦府) 등의 무장 독립군 단체 대표들이 남만한족통일회(南滿韓族統一會)를 개최하였다. 이때 대한독립군 대표로 참여하였다. 이리하여 남만 지역의 항일연합군정부(抗日聯合軍政府)인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가 결성되었다. 대한통의부는 총장 김동삼(金東三), 부총장 채상덕(蔡相悳)을 비롯한 참모부장 이천민, 부감 전덕원(全德元) 등으로 구성되었는데, 이때 윤세용·오석영(吳錫永)·독고욱과 함께 참모(參謀)에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같은 해 12월 29일부터 1월 8일까지 11일에 걸쳐 회의를 하였을 때 해당 중앙회의의 의장 명의로 박규수(朴奎洙)를 부의장에 선출하였고, 김동삼을 총장에, 이웅해(李雄海)를 민사부장에, 이천민을 군사부장에, 오동진(吳東振)을 재무부장에, 이병기(李炳基)를 학무부장에, 현정각(玄正脚)을 고등사판장에, 김창환(金昌煥)을 의용군사령관 등에 개선(改選)하였다. 1923년 개최된 국민대표회의(國民代表會議) 당시 오동진·이천민·현정각 등과 함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제도·헌법·인물을 실제운동과 시의(時宜)·민도(民度)에 맞도록 개조(改造)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새로운 지도기관을 ‘창조’함은 불가하다면서 창조파의 입장을 반대하였다. 1926년 이후 룽징(龍井)에서 대성중학교(大成中學校) 교사로 근무하며 민족 교육에 동참하여 후진 양성에 힘썼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권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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