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춘서
姜春瑞1872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5) 1872년에 강원도 평창군(平昌郡) 진부면(珍富面)에서 출생하였다. 평소 농업에 종사하며 생계를 유지하던 농민 출신 의병이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이 박탈되었으며, 1907년 한일신협약(정미7조약)과 함께 광무황제(고종)가 강제로 퇴위하고 군대까지 해산당하는 등 국권 상실이 현실화하자 전국에서 항일 의병이 일어나 국권 회복 운동을 전개하였다. 특히, 1907년 군대해산 이후에는 해산 군인들이 대거 의병에 참여하였을 뿐 아니라 일반 평민들 주도로 의병부대가 결성되어 일본군과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강원에서도 춘천과 원주, 강릉 지역을 중심으로 의병부대가 결성되었는데, 그 가운데 가장 두각을 보인 의병부대는 원주에서 거의한 민긍호(閔肯鎬) 의병부대다. 즉, 강원도 내 의병 활동은 1907년 8월 민긍호가 이끄는 원주진위대와 원주 주민이 함께 거의하면서 시작되었으며, 이후 강원도 내 각지로 확산할 수 있었다. 한편, 평창에서는 우참봉(禹參奉)이 거의하여 의병을 규합하였으며, 평창 봉평면 출신의 권치봉을 비롯하여 김덕선 등이 이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이들은 평창·인제·양양 등지를 다니면서 우편취급소나 경찰서 등을 공격하거나 친일파를 제거하는 등 의병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였다. 같은 시기 박래혁(朴來赫)이 평창에서 거의하여 독자적인 의병부대를 결성하자 이에 호응하여 참여하였다. 박래혁 의병부대와 함께 평창과 정선을 오가면서 주로 험준한 산악지대를 중심으로 유격전을 전개하면서 일본군에 타격을 주었다. 1908년 (음)4월경 박래혁의 지휘 아래 일본군 수비대와 교전하였다. 하지만 강력한 공세에 밀려 박래혁 의병부대는 상당한 타격을 받게 되었으며, 일시적으로 해산되었다. 의병부대에서 이탈하여 은신하던 중 추격해오던 일본군에 체포되었다. 이후 1908년 10월 13일 경성지방재판소에서 유형(流刑) 3년 형을 선고받아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홍동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