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홍
文在弘1895. 4. 19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7)
관련 사건
- · 안성군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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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2017) 1895년 4월 19일 경기도 안성군(安城郡) 이죽면(二竹面) 죽산리(竹山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한자가 다른 문재홍(文在泓)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1919년 당시 25세로 고향에서 농사를 짓고 살다가, 4월 2일 이죽면 죽산리 죽산장터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죽산리의 만세시위는 4월 1일에서 3일까지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특히 4월 2일은 죽산시장의 장이 서는 날이었으므로, 죽산공립보통학교(竹山公立普通學校) 학생과 죽산지역 농민 등이 다수 참여하여 공세적인 만세시위를 벌일 수 있었다. 4월 2일 죽산시장에서 만세시위에 참가하여 학생과 군중의 독립사상을 고취하였다. 이날 오전 10시 죽산시장에 위치한 일본인 모리이치(森市次)의 상점에서 물품을 구입한 보통학교 학생들에게 “지금 조선은 독립운동 중이고 일본인과의 관계를 끊기로 되어 있으니, 일본인으로부터 물품을 사들이지 말라”고 타일렀다. 또 군중 앞에서 “조선이 독립할 때에는 일본 정부가 발행하는 지폐는 통용되지 않게 될 것이니, 가지고 있어도 소용없다”고 외친 후 가지고 있던 10전짜리 지폐를 찢어 보이며 항일 의지를 보였다. 이후 해질 무렵 죽산시장에서 1,000여 명의 군중과 함께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그리고 죽산경찰관주재소로 밀고 들어가,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다가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19년 5월 2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를 제기하여, 같은 해 7월 26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이 취소되고 징역 6월로 감형되었다. 다시 “나의 행위는 조선 민족으로서 정의·인도에 기초하는 의사 발동으로 범죄가 아니며, 유죄판결은 부당하고 복종할 수 없는 위법”이라고 주장하며 상고하였으나, 그 해 10월 4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겪다가, 1920년 4월 4일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박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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