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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은

朴來殷

1918. 9. 25 ~ 2005. 5.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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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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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금산(錦山)문화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금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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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18년 9월 25일 전라북도 금산군(錦山郡)(현 충청남도 금산군) 금산면(錦山面) 지방리(芝芳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박내성(朴)來(成)을 사용하였다. 일제가 창씨개명을 강요하자 청목무웅(靑木茂雄)으로 고쳤다. 기독교 집안에서 성장하여 고향의 보통학교를 거쳐 1936년 3월 전주(全州) 소재 기독교계 신흥(新興)학교를 졸업하였다. 그 해 6월 전주사범학교 강습과에 입학하여 1937년 3월 졸업하고, 바로 전북 순창군(淳昌郡) 금과면(金果面) 소재 금과보통학교 교원으로 부임하였다. 1938년 6월 학교 부설 농업실습지에서 담임을 맡은 5학년 학생 60여 명에게 “조선인은 일본에 가려면 도항증명서가 반드시 필요하지만 일본인은 제한 없이 자유롭게 조선에 올 수 있다. 또한 조선인은 아무리 뛰어난 영재라도 대신(大臣)이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일본인으로부터 혹사당하고 있다”고 말하며 내선일체(內鮮一體)의 허구성을 폭로하였다. 1939년 7월 금과면 내동리(內洞里)에서 담임을 맡고 있던 학생들에게 “3·1운동 때 전북의 어느 여학교 학생이 손가락을 잘라 그 피로 조선만세라고 쓴 깃발을 만들고 이를 흔들며 조선독립만세를 절규하였다”라고 말하며 항일의식을 고취하였다. 같은 해 10월, 5학년 교실에서 신라(新羅)와 백제(百濟)의 역사를 가르치며 “조선에도 신라와 백제처럼 훌륭한 문화가 있으니 조상의 지혜를 계승할 수 있도록 조선을 위해 최선을 다하자”라고 말하여 민족문화의 우수성을 교육하기도 하였다. 이어 1941년 5월 하순 무렵, 학교 부근 농업실습지에서 6학년 학생들에게 “현재 미국과 일본이 전쟁을 하고 있는데, 자원과 병력에서 일본이 부족하기 때문에 패할 것이고 미국이 조선을 점령할 것이므로 그때 조선인은 조선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라며 한국의 독립 가능성을 전파하였다. 이렇게 교사로서 학생들에게 민족의식과 항일 독립정신을 고취하다가 1941년 7월경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같은 해 11월 21일 전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이후 독립운동도 빌미가 되어 1941년 12월 17일 전주지방법원 합의부에서 소위 치안유지법과 육해군형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1942년 4월 6일 고등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되어 원심대로 징역 1년 6월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1945년 광복 후 교육계에 투신하여 1952년 대전 삼성초등학교 교감, 1964년 강경 황산초등학교 교장, 1970년 중앙대 부속초등학교 교장 등을 역임하였다. 1984년 서울 숭곡초등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임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전병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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