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호
朴魯灝1912. 4. 17 ~ 1963. 4. 1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적색농조준비위
- · 전남운동협의회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전남협의회 사건
- · 적농건설준비위원회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12년 4월 17일 전라남도 완도군(莞島郡) 고금면(古令面) 청룡리(靑龍里)에서 박용래(朴瑢來)의 4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17세에 고금면의 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31년 4월 보성고등보통학교(普成高等普通學校)에 입학하였으나 2학년 때 중퇴한 후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였다. 1933년 3월 이기홍(李基弘)의 지도로 사상서적을 탐독한 후 사회주의 사상에 공명하게 되었다. 이에 전남운동협의회(全南運動協議會)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전남운동협의회는 해남(海南)에서 김홍배(金洪培)·오문현(吳文鉉)과 완도에서 황동윤(黃同允)이 중심으로 1933년 5월 14일 해남군 북평면(北平面) 동해리(東海里)의 성도암(成道庵)에 조직한 항일 비밀결사였다. 이 모임은 전남지역 농민·어민·노동자와 지식인을 포함한 사회주의운동의 통일적 지도기관으로 그 목적을 수행하고자 하였다. 이에 따라 그 산하에 구원부(救援部)·사무부(事務部)·조사부(調査部)·조직부(組織部)의 조직을 갖추고 『농민투쟁(農民鬪爭)』을 기관지로 발간하였다. 1933년 8월 11일 해남군 삼산면(三山面) 구림리(九林里)에 소재한 대흥사(大興寺) 심적암(深寂庵) 옆 계곡에서 열린 회합에 참여하여 전남운동협의회를 ‘적색농조준비위(赤色農組準備委)’로 개칭하였다. 그리고 운동전선을 농민운동에 국한하고, 농민운동의 지도 기관으로 각 군에 농민조합을 조직하며, 하부 조직 확충을 위해 농촌 각 마을에 2~5명 단위의 농민반·소년반·청년반 조직을 운동방침으로 결정하였다. 1933년 9월 2일 항일 의식을 고취시키고자 이기홍·황동윤 등과 함께 완도군 고금면 청룡리의 마을사무소 등 두 곳에서 70여 명에게 노동자·농민들의 비참한 생활상과 일제와 친일지주의 착취를 풍자한 ‘어떤 농민(或農民)’이라는 소인극(素人劇)을 공연하기도 하였다. 또한 그 해 10월 초순 이기홍 외 1명과 함께 청년반을 조직하여 책임자로 활동하였다. 이어 12월 말 무렵, 이기홍·이흥쇄(李興刷), 그리고 농민반·청년반 반원들과 함께 고금면 세동리(細洞里) 1065번지 1의 김공술(金公述) 집에 모여 농민반과 청년반을 토대로 완도적색농민조합(莞島赤色農民組合) 고금도 지부를 결성하기로 하였다. 이와 같이 활동하던 중 1934년 2월 강진(康津)의 윤가현(尹珂鉉)이 1933년에 있었던 강진 병영(兵營)주재소 방화사건의 용의자로 검거되면서 조직의 일부가 드러났다. 완도·해남은 물론 인근 9개 군에서 558명이 검거되었는데 이때 함께 붙잡혔다. 1936년 12월 28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징역 1년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윤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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