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식
閔榮植1899. 6. 26 ~ 1980. 11. 29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6)
관련 사건
- · 금마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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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6) 1899년 6월 26일 충청남도 홍성군(洪城郡) 금마면(金馬面) 인산리(仁山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1일 홍성군 금마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1919년 3월 1일 이래 전국 각지에서 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되고 있음을 파악한 가산리(佳山里)의 민영갑(閔泳甲)은 같은 마을의 이재만(李載萬)과 금마면에서 만세운동을 조직하기로 협의하였다. 이들이 만세운동을 계획하는 과정에서 김재홍(金在洪)·최중삼(崔仲三)·조재학(趙載學)·조한원(趙漢元) 등이 동지로 결합하면서 만세운동 계획은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가산리에서는 4월 1일 주민들을 대상으로 연극 공연이 예정되어 있었다. 장소는 이원교(李元交)의 집에 설치된 임시 연극공연장이었다. 이에 민영갑·이재만 등은 연극 공연 관람을 위해 참석한 주민들과 함께 만세운동을 전개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4월 1일 민영갑·이재만·김재홍·최중삼·조재학·조한원 등은 이원교의 집으로 가서 연극을 관람하던 중 기회를 보아 오후 8시부터 조선독립만세를 선창하고, 만세운동에 동참할 것을 역설하였다. 이들의 호소를 듣고 공감한 주민 수십 명이 동참하여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 날의 만세시위는 일제 경찰에 의해 해산되어 귀가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4월 4일에는 홍성군 금마면과 그 주변 3개 면의 20여 개소에서 봉화시위가 일어났다. 홍성경찰서 관할 일본 경찰들이 총기를 발포하여 만세시위 참가자 10여명이 사망하고 주도 인사 5명이 체포되었다. 현재 전하는 자료의 한계로 참여한 금마면 만세시위를 특정할 수 없으나 만세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는 이유로 붙잡혀 홍성경찰서로 끌려갔다. 1919년 4월 23일 홍성경찰서의 즉결 재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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