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록식
閔祿植1897. 3. 11 ~ 1962. 3. 3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5)
관련 사건
- · 금마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5) 1897년 3월 11일 충남 홍성군(洪城郡) 금마면(金馬面) 인산리(仁山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일어난 홍성군 금마면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금마면의 만세운동은 가산리(佳山里)의 민영갑(閔泳甲)과 이재만(李載萬)의 주도로 추진되었다. 1919년 3월 1일 이래 전국 각지에서 만세시위가 일어나고 있음을 알게 된 민영갑은 서울 사정에 밝은 이재만과 협의하여 만세시위를 전개할 것을 결의하였다. 이후 평소 교류가 있던 김재홍(金在洪)·최중삼(崔仲三)·조재학(趙載學)·조한원(趙漢元) 등이 뜻을 같이 하면서 만세시위 계획은 구체화되었다. 가산리에서는 4월 1일 주민들을 대상으로 연극공연이 예정되어 있었다. 장소는 이원교(李元交)의 집에 설치된 임시 연극 공연장이었다. 민영갑·이재만 등은 연극 공연에 주민들이 모일 것이기 때문에 이때를 기회로 만세시위를 일으킨다는 계획을 세웠다. 4월 1일 민영갑·이재만·김재홍·최중삼·조재학·조한원 등도 연극 관람을 가장하고 이원교의 집으로 갔다. 연극이 끝나기 전인 오후 8시 이들은 조선독립만세를 선창하면서 관객으로 참석한 주민들에게 만세시위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였다. 이들의 호소를 듣고 공감한 수십 명의 주민들과 만세시위에 동참하여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이것이 금마면의 제1차 만세시위였다. 만세시위가 발생하자, 곧이어 일제 경찰이 출동하여 연극공연장의 주민들을 해산시켜 귀가 조치하였다. 다음날인 3월 2일 민영갑·이재만 등은 전날 만세시위에 참여한 주민들과 다시 모여 홍성시장으로 가서 제2차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때 홍성시장에 나갔다가 만세시위를 목격하고, 이에 공감하여 시위에 동참하였다. 민영갑·이재만 등의 지휘에 따라 시장 곳곳을 행진하며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날의 시위 직후 일제 경찰이 진행한 만세시위 참여자 색출·검거과정에서 붙잡혀 조사받았다. 1919년 4월 23일 홍성경찰서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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