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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태근

文泰根

1882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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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문태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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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서천(舒川)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서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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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3)

관련 사건

  • · 서천군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3) 충청남도 서천군(舒川郡) 화양면(華陽面) 망월리(望月里)에서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882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1919년 3월 29일 마산면(馬山面) 신장리(新腸里) 장터, 30일 종천면(鍾川面)의 면사무소 소재지인 화산리(花山里) 등지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신장리 장터에서는 3월 29일 송기면(宋箕勉)과 그의 친형인 송여직(宋汝直)·유성렬(劉性烈)·이근호(李根浩)·임학규(林學圭) 등 기독교인들의 주도로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사전에 자택에서 태극기 200장을 준비한 송기면 등은 신장리 장날인 3월 29일 시장에 나와 사람들에게 태극기를 배포하였다. 이들이 시위 군중 앞에 서서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선창하자 수백 명의 군중이 이에 호응하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이 날 만세시위에 참여해 군중들과 함께 독립만세를 힘껏 외쳤다. 만세시위 소식을 접한 순사보 이한규(李翰圭) 등 일제 경찰이 출동하여 시위대의 해산을 명령하고, 중심 인물인 송기면·유성렬·송여직·이근호·나상준(羅相俊) 등을 붙잡아 경찰관주재소로 연행하였다. 당시 시장에 나온 사람들이 이 광경을 목격하고 크게 분노하고 만세시위에 동참하면서 시위대의 규모는 2,000여 명으로 늘어났다. 주민들은 붙잡힌 사람들을 구출하기 위해 경찰관주재소를 공격하자고 나섰다. 이에 시위대는 경찰관주재소로 행진하여 창문과 집기를 부수며 연행된 송기면 등 6명을 구출하였다. 이후 시위대는 한산면(韓山面)을 경유해서 서천읍을 향해 행진하였다. 행진 도중 말을 타고 급히 달려 온 군수(郡守) 권익채(權益采)로부터 “일제 헌병이 매복해 있으니 해산하라”는 권고를 받고 해산하였다. 다음날인 3월 30일에는 종천면의 화산리에서 약 2,000여 명이 참여하여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3월 29~30일에 걸친 서천군의 만세시위에 참여한 이유로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4월 1일 서천경찰서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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