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동
文在東1868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8)
관련 사건
- · 임천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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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8) 충청남도 부여군(夫餘郡) 내산면(內山面) 지지리(芝池里)에서 출생하였다. 판결문에 따르면 1868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이명으로 문재동(文載東)이 있다. 1919년 3월 일어난 부여군 임천면(林川面)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부여군 임천면의 읍내 독립만세시위는 이 지역 천도교(天道敎) 교도들을 중심으로 일어났다. 부여에 독립선언서가 전파된 시기는 서울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난 바로 다음날인 3월 2일이었다. 이날 밤 논산(論山)의 천도교 교구실은 김태호(金泰昊)를 부여의 천도교 교구실로 파견하여 박성요(朴性堯) 등 부여지역의 천도교도들에게 「독립선언서」를 전달하면서, “조선독립선언서는 손병희(孫秉熙)의 발신이니 신속히 비밀리에 각 지역에 배포·살포하라”는 내용을 알렸다. 서울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달받은 박용화(朴容和)는 교주 손병희와 행동을 같이 하고자, 1919년 3월 6일 새벽 충화면(忠化面) 팔충리(八忠里)의 자택으로 동료 천도교도들을 소집하였다. 이 모임에 참석하여 박용화와 박성요·황우경(黃宇京)·황금채(黃金彩)·정판동(鄭判同)·최용철(崔容澈) 등과 협의해 독립만세운동을 거행하기로 결의하였다. 이어서 당일 오전 7시 임천 읍내로 나가 만세운동을 시작하였다. 박성요는 읍내 여러 곳에 「독립선언서」를 붙였고, 황우경은 읍내 시장 등에서 독립만세운동에 대해 연설하였다. 이에 공감한 주민들이 만세운동에 동참하자 이들과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연창하면서 구교리(舊校里)에 위치한 면사무소와 임천공립보통학교(林川公立普通學校) 등으로 행진하면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오전 10시에는 박용화·최용철 등 만세운동을 계획한 천도교도들과 함께 부여헌병분대(扶餘憲兵分隊) 임천출장소로 이동하여 ‘한국은 이미 독립하였으며 서울에서 만세를 부르니 우리도 부르겠다.’라고 통고하였다. 이는 충남지역에서 일제 치안기관을 직접 방문하여 ‘한국 독립 승인’을 요구한 최초의 독립운동이었다. 이 일로 박용화·박성요 등 다른 천도교도들과 함께 일제 헌병에게 붙잡혀 법원으로 송치되었다. 1919년 4월 4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7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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