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의경
文義卿1889. 9. 8 ~ 1970. 10. 7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7)
관련 사건
- · 영덕군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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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7) 1889년 9월 8일 경상북도 영덕군(盈德郡) 지품면(知品面) 율전동(栗田洞)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영덕군 지품면 신안동(新安洞)에서 일어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영덕 지역의 만세운동은 3월 18일 영해(寧海) 장터에서의 대규모 만세시위로 시작되어, 4월 4일 남정면(南亭面)의 만세시위로 끝났다. 만세시위가 일어난 곳은 영덕군 내 총 9개의 면 가운데 영덕면·영해면(寧海面)·남정면(南亭面)·지품면·병곡면(柄谷面)·창수면(蒼水面) 등 6개 지역이다. 그중에서도 영덕 북부 3개 면(영해면·병곡면·창수면)의 만세시위는 경상북도 내에서도 가장 격렬했던 것으로 평가받는다. 영덕 지역 만세운동이 시작되었던 3월 18일에는 영해면·영덕면·병곡면 등지에서 만세시위가 있었다. 영해면의 시위는 영덕군 지품면 낙평동(洛坪洞) 교회 조사(助事) 김세영(金世榮)에 의해 발의되었으며, 그의 뜻에 찬동한 낙평동 교회 구세군 참위로 있던 권태원(權泰源)과 병곡면 송천동(松川洞) 교회 조사 정규하(丁奎河) 등이 세력을 규합해 갔다. 한편 영덕면의 시위는 김세영의 부탁을 받아 같은 교회 영수(領袖) 김혁동이 영덕면 금호동(錦湖洞) 교회 조사 강우근(姜佑根)을 찾아간 것을 계기로 시작하였다. 영덕면의 시위는 지품면 시위로, 영해면의 시위는 병곡면 시위와 창수면 시위로 이어졌다. 한편, 병곡면의 시위는 영해면의 시위대 중 일부가 병곡면까지 이동하여 시위를 전개한 결과였다. 3월 18일부터 군내 여러 지역에서 만세시위가 일어나면서 독립운동의 열기가 고조되자 3월 20일, 지품면 신안동의 윤석초(尹石焦) 집에서 김형문(金亨文) 등과 함께 각지의 독립만세운동 상황에 대해 논의하였다. 이 자리에서 지품면에서도 함께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의기 투합하고 본격적으로 준비에 나섰다. 당일 저녁 재차 회합하여 ‘대한조선독립만세’라는 문구를 기입한 종이 태극기를 제작하였다. 그리고 마침 집 앞에 모인 군중들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며 행진하였다. 약 2시간에 걸친 행진 뒤 시위대는 자진 해산하였다. 그러나 뒤늦게 만세시위를 탐지한 일본 경찰에 의해 주도자로 붙잡혔다. 1919년 5월 5일 대구지방법원 영덕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아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박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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