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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산

文英山

1881. 1. 8 ~ 1959. 10.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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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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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알아보는 인물 · 문영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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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서산(瑞山)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서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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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5)

관련 사건

  • · 서산군 대호지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5) 1881년 1월 8일 충청남도 서산군(瑞山郡) 대호지면(大湖芝面, 현재 당진시) 도이리(桃李里)에서 출생하였다. 본관은 남평(南平)이고, 한자가 다른 문영산(文榮山·文永山)·문영식(文英植) 등의 이명을 사용하였다. 어린 시절 도남서당(桃南書堂)과 도호의숙(桃湖義塾)에서 한학을 수학하였다. 대호지면의 독립만세운동은 1919년 3월 3일 고종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2월 상경했던 남주원(南柱元)·이두하(李斗夏)·남계창(南啓昌)·남상직(南相直)·남상락(南相洛) 등 도호의숙(桃湖義塾) 출신 유생들이 귀향하여 서울의 만세운동 소식을 전하면서 준비되었다. 이러한 지역 유생과 유지들의 뜻을 모아 만세운동으로 구체화한 것은 면장 이인정(李寅正)을 비롯한 면사무소 직원들이었다. 1919년 3월 26일 대호지면사무소에서 면서기 김동운(金東云)·강태훈(姜泰壎)·민재봉(閔載鳳)과 면사무소 직원 송재만(宋在萬) 등이 모임을 갖고 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뜻을 모았다. 다음 날인 3월 27일 다시 모여 김동운이 “4월 4일 오전 8시경까지 도로 수선을 위해 면민 각호 1명씩 집합하라는 공문을 작성해 구장들에게 배포하고 정미면 천의시장으로 가서 독립만세를 외치자”라고 실행 방안을 제시하였다. 4월 3일에는 송재만이 9개 마을의 구장에게 도로 수선을 위해 집합하라는 내용의 면장 명의로 된 공문을 전달하며 주민들에게 고지하도록 부탁하였다. 이때 어린 시절 도남서당에서 함께 공부한 사람들의 친목 조직인 도남회를 통해 만세운동 계획에 대한 내용을 전달받고, 이에 동의하여 만세운동 계획에 참여하였다. 도남회를 만세운동의 연락망으로 활용하면서 만세운동의 자금 확보에 노력하였다. 4월 4일 아침 면사무소 앞에 집결한 600여 명의 주민들과 함께 면장 이인정 등의 지휘에 따라 만세시위 대열을 갖추어 ‘조선독립만세’를 고창하면서 면사무소로부터 7km 거리의 천의장터를 향해 행진하였다. 시위대열이 천의장터에 도착하자 시장에 나온 사람들이 만세운동을 목격하고 시위에 속속 동참하여 시위대의 규모는 1,000여 명에 이르렀다. 이들과 함께 장터의 곳곳을 행진하며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만세시위가 마무리될 무렵 천의장터로 급파된 당진경찰서 순사들의 발포로 4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이에 분노해 만세시위에 참여한 군중과 함께 천의주재소로 달려갔다. 송재만, 남상은 등의 지휘에 따라 주재소를 완전히 파괴한 후, 제2차 거사를 기약하고 귀가하였다. 이날의 시위 이후 참여자 검거를 위해 출동한 홍성헌병수비대로부터 이른바 보안법과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 소요 등으로 수배되었으나, 피신하여 6월 30일 대전지검 공주지청에서 기소중지 처분이 내려졌다. 그러나 이후 결국 붙잡혀 10월 24일 공주지방법원에서 같은 이유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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