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응백
朴應伯미상 ~ 1927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천마산대
- · 참의부
포상 정보
- · 독립장(1963)
관련 사건
- · 천마산대
- · 참의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독립장(1963) 평안북도 삭주(朔州) 출신이다. 이명은 박용빈(朴鏞彬)·박송우(朴松雨)이다. 만주 지역에서 무장 항일투쟁에 가담하였다. 1919년 만세운동 이후 최시흥(崔時興)·최지풍(崔志豊)·최천주(崔天柱)·김세진(金世鎭)·심용준(沈龍俊)·양봉제(梁鳳濟) 등 한국군 출신들과 함께 천마산대(天摩山隊)를 결성하고 참모에 취임하였다. 천마산대의 활동은 크게 군자금 모금, 일제 식민통치기관의 파괴, 일제 군경과 친일분자, 독립운동 비협조자에 대한 처단, 일제 군경과의 교전 등 다양하게 전개되었다. 천마산대는 남만의 광복군사령부를 뒤이은 광복군총영(光復軍總營)과 합작하여 국내지대인 천마별영으로 활동하였다. 1921년 일제 경찰의 추격이 심해지자, 만주로 건너가 광복군총영의 소대장으로 활동하였다. 1921년 2월 부하 8인을 인솔하고 벽동군(碧潼郡) 가별면(加別面) 대상동(大上洞)에서 일본군 5명을 사살하였고, 5월 15일 부하 12명을 인솔하고 영원군(寧遠郡) 고면(古面)으로 이동하여 일본군 1명을 사살하였다. 그 해 7월 19일 심용준 중대장과 협의하여 부하 19명을 인솔한 후 창성군(昌城郡) 대유동(大楡洞)에 소재한 경찰주재소를 습격하였다. 1922년 3월 부하 4인을 인솔하고 영원군 고면 성곡(城谷)에서 일본군과 교전, 5명을 사살하였고 7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같은 해 8월 이른바 8단 9회의 단체가 통합하여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가 조직되자 천마산대는 통의부의용군 제3중대가 되었고, 이때 군 간부로서 여러 번 독립군 전투에 참여하였다. 1923년 8월 백광운(白狂雲)·조능도(趙能道)·김원상(金元常)·조태빈(趙泰賓) 등과 함께 통의부의용군 각 중대 대표로 상하이(上海)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파견되어 육군주만참의부(참의부) 결성에 참여하였다. 1924년 5월 이후 참의부 초기 백광운 참의장 시기와 최석순(崔碩淳) 참의장 시기에는 훈련대장으로 활약하였다. 참의장 겸 제1중대장인 백광운이 통의부에 의해 살해된 후 1925년경 최지풍을 대신하여 제3중대장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유능한 장교를 많이 보유했던 제3중대는 천마산대 출신들이 주축을 이루었다. 1925년 5월 고마령(古馬嶺)전투에서 참의장 겸 제2중대장 최석순을 비롯한 제2중대의 대부분 병력을 잃었다. 같은 해 8월 참의부 제1회 행정회의에서 훈련위원 겸 사령장이 되어 부대를 통솔하였다. 참의부는 1926년 봄 신임 참의장으로 윤세용(尹世茸)을 영입하고 조직을 재편하였다. 3월 이호(李鎬)·임상춘(林常春) 등이 러시아의 협조로 다량의 무기를 확보하게 됨에 따라 국내 진공작전을 재개하였다. 1927년 동지들과 함께 국내 진공작전 수행을 위하여 평북 삭주군의 경계 지점에서 일본군과 교전하던 중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김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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