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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준

朴東俊

1915. 7. 27 ~ 1970. 5.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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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박동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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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완도(莞島)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완도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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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전남운동협의회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8)

관련 사건

  • · 전남운동협의회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8) 1915년 7월 27일 전라남도 완도군(莞島郡) 군외면(郡外面) 불목리(佛目里)에서 태어났다. 일제가 창씨개명을 강요하자 죽산동준(竹山東俊)으로 고쳤다. 활동 당시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였다. 1933년 완도군 군외면 내에서 공산주의에 입각한 단체를 조직하고, 농·어민 쟁의와 반제국주의 운동을 계획하였다. 1933년 5월 14일 조직된 전남운동협의회(全南運動協議會)는 당시 전남 서부 지역의 농촌에서 조직되었고, 그 지도자 중 한 명인 황동윤(黃同允)을 중심으로 완도에서의 활동을 모색하고 있었다. 이 협의회에 회원으로 참여하였다. 1933년 9월 자택에서 동지 김인학(金仁學)과 무산계급의 공동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친목회(親睦會)를 조직하고, 공산주의 사상의 보급과 회원 모집을 결의하였다. 이어 1933년 12월 말에는 자택에서 동지들과 공산주의 활동의 세포 조직으로 청년반(靑年班)을 결성하고, 공산주의 사상의 보급을 통한 일본제국주의의 축출과 무산계급독재 실현을 목표로 하였다. 그러나 전남운동협의회의 활동은 윤가현(尹珂鉉)이 1933년 9월의 ‘강진군(康津郡) 주재소 방화 사건’에 연루되어 1934년 붙잡히면서 일제 측에 발각되었고, 같은 달 2월 일제의 광범위한 추적으로 전라남도에서 558명이 검거될 때 함께 붙잡혔다. 전남운동협의회의 활동을 ‘사상사건’으로 간주한 일제는 1934년 9월 247명을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으로 송치하였으나, 이때 목포지청에서 9월 15일 기소유예 처분을 받고 풀려났다. 그러나 일제는 이 기간 동안 협의회 회원들을 구금 상태로 조사하였으므로 수형기간은 약 8개월에 달하였다. 조사 기간 동안 받은 혹독한 고문과 가혹한 수형 환경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풀려난 이후에는 은거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조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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