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덕실
朴德實1901. 3. 4 ~ 1971. 3. 1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혈성단
- · 대한민국애국부인회
- · 근우회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8)
관련 사건
- · 대한민국애국부인회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8) 1901년 3월 4일 경상남도 진주군(晋州郡) 진주면(晋州面) 평안동(平安洞, 현 진주시 평안동)에서 태어났다. 진주교회 초대 장로를 역임한 박영숙(朴榮淑)의 장녀이다. 기독교 호주장로파(濠洲長老派) 선교사와 밀접한 가풍과 운동 직전까지 호주장로파 선교사들이 설립한 광림학교(光林學校)·시원여학교(柴園女學校)의 교사를 역임하였다는 일제의 기록으로 미루어볼 때, 이들 미션스쿨 계통의 근대교육을 받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일제가 창씨개명을 강요하자 청천덕자(淸川德子)로 고쳤다. 진주지역 독립운동의 한 축이었던 기독교계의 일원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大韓民國 臨時政府)와 독립지사를 지원하기 위한 각종 단체활동에 앞장섰다. 1919년 6월 각지의 부인단체가 연합하여 대한민국애국부인회(大韓民國愛國婦人會)를 설립할 때 진주지부장으로서 임시정부로의 독립운동자금 송금, 만세운동으로 투옥된 지사들의 구명(救命) 활동에 앞장섰다. 1919년 9월 광림학교 교사였던 강우석(姜佑錫)과 진주교회 서기 홍수원(洪秀瑗)은 국권 회복을 목표로 임시정부 지원과 청년 규합을 위해 혈성단(血誠團) 조직을 논의하였는데, 10월 11일 밤 두 사람이 통영의 교회학교 교사 여병섭(吕炳燮)과 이후의 활동을 논의할 때 자택을 회의장으로 제공하기도 하였다. 또한 장차 독립전쟁이 발발할 때 후방지원과 구호업무를 목적으로 하는 대한적십자회(大韓赤十字會)가 설립되자 진주지부의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밀정(密偵)을 통해 이들 단체의 동향을 입수한 일제 경찰이 11월 28일부터 검거에 나서면서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했다는 이유로 붙잡혔다.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대구지방법원 검사국에 송치되어 재판에 회부되었다. 1920년 1월 2일 기소유예 처분을 받고 풀려났으나, 구금 상태로 재판받았으므로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풀려난 이후 기독교 여성계 인사로서 민족·여성계몽 활동에 투신하여 진주 일대의 계몽강연과 여성야학 설립을 주도하였고, 1924년에는 진주 시내 여자보통학교 설립 실행위원으로 활동하였다. 이와 같은 지역사회 참여를 바탕으로 1926년부터 진주여자청년회(晋州女子靑年會)의 임원을 역임하였고, 1928년에는 근우회(槿友會) 진주지회의 위원에 선임되었다. 해방 이후에는 남편 한규상(韓圭相)과 함께 진주의 의료계에서 활동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조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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