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원
朴基源1910. 7. 15 ~ 1990. 9. 27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광주공립고등보통학교 독서회
- · 보성적색농민부
포상 정보
- · 애족장(2018)
관련 사건
- · 광주학생운동
- · 전남노농협의회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8) 1910년 7월 15일 전라남도 보성군(寶城郡) 미력면(彌力面) 초당리(草堂里)에서 박양현(朴亮炫)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함양(咸陽)이며, 자는 권수(權守), 호는 현산(玄山), 이명은 박창석(朴昌錫)이다. 어려서 서당에서 한학을 공부하였다. 1925년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광주공립고등보통학교(光州公立高等普通學校, 현 광주제일고등학교)에 입학하였다. 1929년 6월 하순 장재성(張載性)·김상환(金相煥) 등과 함께 회합하여 비밀결사 독서회를 결성하였다. 이 독서회는 성진회(醒進會)를 확대·재편하여 결성한 ‘독서회 중앙부’와 같은 목적으로 결성된 결사였다. 이 자리에서 각기 담당 부서와 역할을 분담하였는데, 독서회 대표 밑에 조사선전·조직교양·재정의 3개 부서를 두었다. 독서회 대표는 김상환이 맡았으며, 졸업생인 장재성은 밖에서 지도를 담당하기로 하였다. 회원은 다시 5개 그룹으로 나누어 공산주의 등 신사상을 연구하기로 하고, 회비는 월 20전으로 하였으며, 비밀을 엄수한다는 등의 내규도 정하였다. 이때 윤창하(尹敞夏)·이영범(李翎範)과 함께 조사선전부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그 해 9월 강문영(姜文永) 집에서 모였을 때 독서회는 열성적이지 않은 회원을 제명하고 독서회를 해산하였다. 이후 열성적인 회원을 중심으로 다시 독서회를 재조직하기로 하였다. 그러던 중 같은 해 11월 ‘독서회 중앙부’의 지도 아래 광주학생운동이 확대되면서 대대적인 검거 선풍이 일어났고, 12월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30년 3월 광주공립고등보통학교에서 퇴학당하였다. 그 해 7월 17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예심이 종결되었고, 같은 해 10월 18일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3년(미결구류일수 70일 본형산입)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즉시 항소를 제기하였다. 1931년 6월 13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미결구류일수 365일 본형산입)을 받고, 같은 달 17일 대구형무소에서 풀려났다. 1931년 11월 이후 전남 구례(求禮) 출신인 선태섭(宣太燮)의 지도 아래 정은찬(鄭恩燦)·강환진(姜桓珍)·구오현(具五鉉) 등과 함께 공산주의를 연구하였다. 이들은 광주공립고등보통학교 재학 당시 학생 사건으로 붙잡혔다가 출옥한 동지들이었다. 이들은 당시 전국적으로 전개된 혁명적 농민조합운동의 노선에 따라 비밀결사를 조직하기로 하고, 1932년 3월 26일경 보성의 정은찬 집에서 보성적색농민부(寶城赤色農民部)를 조직하였다. 보성적색농민부는 산하에 선전부·교양부·조직연락부를 두었다. 이 조직은 당시 전남지역에서 혁명적 대중조직운동과 조선공산당 재건운동을 전개하던 비밀결사 전남노농협의회(全南勞農協議會)의 산하 조직으로 활동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활동을 전개하다가 ‘전남노농협의회 사건’에 연루되어 다시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33년 11월 18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예심을 마치고, 1년 남짓 지난 1934년 11월 27일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미결구류일수 545일 본형산입)을 받았다. 그 해 12월 6일 광주형무소에서 풀려났다. 이후 보성·광주·서울 등지에서 한약방과 약국을 운영하며 생활하였는데, 가업을 이은 것으로 보인다. 2010년 2월 10일 광주제일고등학교에서 명예졸업장을 수여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변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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