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계남
朴繼男1910. 4. 25 ~ 1980. 4. 27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 소녀회
포상 정보
- · 건국포장(1993)
관련 사건
- · 광주학생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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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1993) 1910년 4월 25일 전라남도 광주군(光州郡) 광주면(光州面) 명치정 5정목(明治町) 5(丁目, 현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5가)에서 태어났다. 1927년 광주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에 진학하였다. 1929년 5월경 장매성(張梅性)의 권유로 박채희(朴采熙)·박현숙(朴賢淑)·김금연(金錦嬿)·김귀선(金貴先) 등과 함께 장매성의 집에서 열린 소녀회(少女會) 회합에 참석하였다. 이 자리에서 소녀회의 설립 취지에 공감하여 가입하였다. 장매성은 당시 광주지역 학생비밀결사 운동의 지도자인 장재성(張載性)의 여동생으로 평소 여성해방과 신사상 연구에 뜻을 두고 있었다. 소녀회는 다른 학생들을 회원으로 가입시키고 민족의식 고취와 신사상 연구에 힘쓰기 위하여 매월 1회 모임을 갖기로 하였다. 학생소비조합을 조직할 때에는 소녀회 회원들이 주축이 되어 30원을 출자하기도 하였다. 소녀회 회원으로서 학교 안팎에서 열심히 활동하였다. 1929년 11월 3일 광주역 앞에서 벌어진 한일학생간의 충돌이 격투로 이어지자, 광주고보생을 중심으로 한 한인 학생들이 광주 시내를 행진하며 시위를 벌였다. 이때 시위에 적극 가담하였다. 이날의 시위 후 주도한 학생들이 경찰에 붙잡혀 구속되자 이에 항의하여 시험을 거부하고 백지동맹(白紙同盟)을 단행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와 같이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다가 소녀회 회원 10여 명과 함께 1930년 1월 15일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 조사를 받던 중이던 1930년 3월경 학교로부터 퇴학 처분을 당하였다. 긴 심문 끝에 1930년 7월 1일 예심이 종결되어 재판에 회부되었다. 같은 해 10월 6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5년을 받았다. 집행유예로 풀려날 때까지 약 9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김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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