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병
朴純秉1901 ~ 1926. 8. 25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조선고학생갈돕회
- · 고려공산청년회
- · 경성무산청년회
- · 대종교중앙청년회
- · 신흥청년동맹
- · 조선학생과학연구회
포상 정보
- · 애국장(2007)
관련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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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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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2007) 함경북도 온성군(穩城郡) 유포면(柔浦面) 향당동(香棠洞)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901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1921년 서울로 이주하여 종로 돈의동(敦義洞)에 거주하였다. 형은 박일병(朴一秉)으로, 조선교육회 이사, 조선청년회연합회, 신사상연구회, 신흥청년동맹 등에서 활동하였다. 1921년 조선고학생갈돕회 간부로 활동하기 시작하였는데, 이 단체는 1920년 6월 창립되었고, 중학생·전문학생으로 구성된 학생단체이자 상조단체였다. 회원 중에는 1920년대 사회주의계열에서 활동한 이들도 적지 않아 사회주의 단체인 서울청년회와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갈돕회는 주로 고학생들의 학비와 기숙사 마련을 위한 후원금 모집, 각종 강연회 개최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3년 갈돕회 경리부장으로 활동 중 이른바 ‘국일관 소요 사건’으로 인하여 10명의 고학생갈돕회 회원들과 함께 종로경찰서 고등계에 붙잡혀 조사를 받았다. 한편 이 시기 고려공산당 선전부원으로 활동하며 사회주의 운동에 뛰어들었다. 1922년 10월 경성무산청년회(京城無産靑年會) 결성에 참여한 이래 이듬해에는 전조선청년당대회후원회 결성에 참여하였고, 3월 대회에 대종교중앙청년회 대표의 일원으로 참석하였다. 1924년 2월 신흥청년동맹 결성에 참여하여 상무집행위원이 되었고, 경기도청년연맹(京畿道靑年聯盟) 상무집행위원·한양청년연맹(漢陽靑年聯盟) 상무집행위원·화요회원·혁청당(革淸黨) 당원 등을 지냈다. 또한 『무산자신문(無産者新聞)』 경성지국장, 『청년대중(靑年大衆)』 조선지국장 등으로 활동하며 언론계에 종사하기도 하였다. 서울의 각 사회단체에서 주관하는 강연회의 연사로 초청받아 강연 활동을 하며 민족의식과 사회주의 사상을 고취하는 데에 기여하였다. 1924년 10월 13일 신흥청년동맹에서 청년문제강연회를 개최하였는데, 이때 ‘청년과 교양’이라는 주제로 “국제연맹을 부인한다”라는 연설을 할 때에 장내를 감시하던 종로경찰서 고등주임의 ‘주의’를 받고 연설을 중지하였다. 같은 해 12월 13일에는 신흥청년동맹에서 개최한 연말 대연설회에서 ‘만국무산청년운동’을 주제로, 15일에는 ‘독일혁명’을 주제로 강연하였다. 1925년 1월 14일 오후 7시에 혁청단의 신년대강연회에서 ‘신년에는’이라는 주제로 강연하였다. 같은 해 3월 15일 천도교기념관에서 열린 인쇄직공청년동맹발기회에 선전연설을 하였고, 그 내용이 ‘불온’하다고 하여 종로경찰서에 검속되었다. 1925년 4월 고려공산청년회 창립대회에 참가하여 중앙위원 후보로 선임되었고, 그 해 11월 조선학생과학연구회 결성에도 참여하였다. 『시대일보』 기자와 정우회 간부 활동을 병행하며 청년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을 전개하다가 ‘제2차 조선공산당 사건’으로 1926년 7월 17일 밤 종로경찰서에 붙잡혔다. 혹독한 조사를 받던 중 맹장염이 악화되어 총독부의원에 입원 치료를 받았다. 다시 관훈동(寬勳洞) 윤치형(尹治衡)이 경영하는 회생의원으로 옮겨 치료받다가 8월 25일 오후 5시 30분 사망하였다. 8월 28일 저녁 그의 시신이 효자동의 숙소에서 고향인 함북 온성으로 이송된다는 소식이 들리자, 한양청년연맹을 시작으로 재경 각 사상단체 동지 130여 명이 경성역 앞에 결집하여 사회장(社會葬)을 거행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일제 경찰 20여 명과 충돌이 있어 이행하지 못하고 해산하였다. 10시 50분 원산행 열차에 실려 원산으로 향하였다. 원산역에 도착하여 경관의 엄중 경계를 받으며 유해가 원산청년회관으로 옮겨졌다. 30일 수십 명의 애도를 받으며 오후 6시 청진(淸津) 각 단체가 고별식을 치렀다. 1927년 사망 1주기를 맞아 서울 각 신문 사회부 기자로 조직된 철필구락부(鐵筆俱樂部)가 8월 28일 오후 5시부터 광화문 앞 동아일보사 강당에서 추도회를 개최하였다. 같은 날 오후 8시에는 신흥청년동맹 등 14개의 사회단체가 그를 기리기 위한 추도식을 시천교당에서 열기도 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박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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