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규
朴商圭1929. 8. 19 ~ 1998. 10. 25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청년독립회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5)
관련 사건
- · 청년독립회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5) 1929년 8월 19일 경상남도 창원군(昌原郡) 창원면(昌原面) 북동(北洞, 현 창원시 의창구 북동)에서 태어났다. 호는 우정(愚庭)이고, 한자가 다른 박상규(朴相圭)라는 이명이 있다. 고향에서 창원국민학교에 입학하였다. 국민학교는 1941년 일제가 황국신민을 양성한다는 초등교육정책을 위해 제정된 제148호 ‘국민학교령’에 의해 보통학교의 명칭이 변경되면서 생겨났다. 1942년 경남 창원에서 한국 독립의 실현을 위해 비밀결사 청년독립회(靑年獨立會)를 결성하고, 신사참배거부와 삐라 살포 운동을 전개하여 독립운동에 조력하였다. 1942년 7월 창원국민학교 출신의 오경팔(吳慶八)·김명수(金明守)·박대근(朴大根) 등 10여 명과 함께 창원면 동정리(東井里) 소재의 창원신사 뒤편에서 독립을 목적으로 한 비밀결사 청년독립회를 조직하였다. 창원국민학교 출신과 함께 청년독립회를 통해 신사참배 거부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는 ‘천황제’ 이데올로기를 근간으로 한 군국주의를 부정하고, 민족말살을 통한 일제의 ‘황국신민화정책’에 저항하는 성격을 내보여 민족의 정통성을 지키려 한 것이었다. 1943년 4월 일제의 패망을 전망하면서 ‘조선독립만세’라고 쓴 벽보를 창원역과 주요 장소에 부착하여 한국의 독립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 뒤 1944년 12월 진해헌병대에 의해 청년독립회의 활동이 발각되어 관련자들과 함께 탄압을 받았다. 일제는 이 사건을 ‘창원 만세 사건’이라 불렀다. 이로 인해 붙잡혀 구금되었고, 부산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았다. 그 과정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광복을 맞아 부산형무소에서 풀려났다. 하지만 고문 후유증으로 오랜기간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김일수⋮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