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박문학

朴文學

1897 ~ 1920. 12. 23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박문학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평남 평양(平壤)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남도 평양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광한단
  • · 결사모험대

포상 정보

  • · 애족장(1995)

관련 사건

  • · 광한단
  • · 결사모험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5) 평안남도 평양부(平壤府) 계리(鷄里)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897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1919년 만세운동 이후 평양금융조합(平壤)金(融組合)의 서기로 근무하면서 광한단의 결사모험대로 활동하였다. 1920년 무장독립운동단체 광한단(光韓團)의 국내 연락과 군자금 모집 단체인 결사모험대(決死冒險隊) 소속으로, 만주에서 온 단원들의 거처를 제공하고 활동을 보조하였다. 압록강 인근인 만주 콴뎬현(寬甸縣)에 본부를 둔 광한단은 국내에 조직기반과 연락망을 구축하고 군자금을 모집하여, 때가 되면 국내 일제의 행정·군사기관을 파괴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광한단의 단장 이시열(李時說)은 그 목적 달성을 위해 대원들을 국내에 잠입시켜 동지의 확보, 연락망 구축, 군자금 모집을 추진하였다. 결사모험대의 일원으로 활동하며 1920년 11월 김관성金(觀聲)·김만길金(萬吉)·박정호(朴正鎬)·문일(文一) 등 4명으로 구성된 대원들이 평양에 잠입하였을 때 금융조합 뒤편 숙직실을 은신처로 제공하였고, 그들이 평양 일대의 모연(募捐) 활동과 평안남·북도 전체에 걸친 연락망 구축을 추진할 수 있도록 지원하였다. 1920년 12월 무렵에는 숙직실에 김관성을 숨겨주고 있었는데, 당시 평북 정주군(定州郡)과 평양을 오가며 군자금 운반과 근거지 확보를 활발히 하던 광한단원들의 활동을 포착한 일제 경찰이 12월 23일 은신처인 금융조합 숙직실을 포위·습격하였다. 일제 경찰의 습격에 맞서 김관성과 함께 갖고 있던 권총으로 대항하였다. 그리고 순사 김태선(金泰善)의 왼쪽 무릎을 저격하였으나, 일제 경찰들의 총격에 맞아 그 자리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조유재⋮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