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무병
朴武丙1923. 5. 29 ~ 1945. 2. 1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14)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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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4) 1923년 5월 29일 경기도 파주군(坡州郡) 교하면(交河面) 송촌리(松村里, 현 파주시 교하동)에서 태어났다. 일제가 창씨개명을 강요하자 혁천무병(赫川武丙)으로 고쳤다. 1944년 경성지방교통국(京城地方交通局) 소속 경성검차구(京城檢車區) 용산분구의 검차수(檢車手)로 근무하면서, 서대문구(西大門區)의 대흥정(大興町, 현 서울특별시 마포구 대흥동)에 거주하고 있었다. 1944년 태평양전쟁에서 일제의 전황이 패배 일로에 있던 일본군의 패전 소식을 듣고 직장 동료들에게 전파하였다. 8월 20일 용산역 구내 대기소에서 동료 직원 길촌창순(吉村昌淳)·양천경순(楊川景淳) 등에게 미국의 사이판(Saipan) 점령 소식을 전하며, “태평양전쟁에서 미군이 사이판을 점령하고 임시 사령부를 그곳에 두어 그 기지로써 일본을 맹렬히 폭격할 것이니 일본은 패전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또한 “1946년~1947년쯤 충청도 계룡산(鷄龍山)에 정씨(鄭氏) 왕국이 들어서 800년간 통치하는 한국 독립의 때가 올 것이며 한국인으로서 독립운동에 참가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는 금광수명金(光秀明)의 말을 듣고, “한국인으로서 독립을 희망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동의를 표하기도 하였다. 8월 하순에는 용산역 내 3번 홈 검차보조소(檢車保助所)에서 길촌창순과 송정을차(松井乙且)에게 “미군 비행기가 큐슈(九州)를 폭격하기 위해 한반도 남부 상공을 지나가고 있는데, 그 비행기에 한국인 조종사가 타고 있다”는 소문을 전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행적이 발각되면서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44년 12월 23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육군형법·해군형법 위반과 ‘안녕질서에 대한 죄’로 징역 1년을 받고, 경성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형무소에서의 가혹한 수형 생활로 인해 1945년 2월 15일 옥중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조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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