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석
朴奇石1899. 5. 25 ~ 1936. 10. 10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민국 임시정부
포상 정보
- · 애족장(2000)
관련 사건
- · 워싱턴회의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0) 1899년 5월 25일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풍산면(豊山面) 하리(下里, 현 안동군 풍산읍 하리리)에서 태어났다. 이름의 한자를 다르게 표기한 박기석(朴璂錫)이라는 이명을 사용하였다. 1920년 8월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재무부 서기로 근무하던 달성군(達城郡) 화원면(花園面, 현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출신 이현수(李賢壽)를 경북으로 파견하였다. 이현수는 이시영(李始榮)·윤현진(尹顯振)·김철(金澈) 등 임시정부 요인들로부터 독립공채표와 경북의 공채모집위원, 교통사무특파원 임명장 등 각종 서류를 수령하여 8월 10일경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후 정덕진(丁德鎭)과 함께 경고장 등을 제작·등사하면서 동지를 모았는데, 그 과정에서 임시정부 안동군 교통사무특파원 사령장을 받았다. 이어 영천군 교통사무지국장 임원조(林元祚), 달성군 교통사무지국장 이상철(李相徹) 등과 함께 이현수를 도와 임시정부의 임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1921년 2월까지 경북 내 한국인 군수, 면장, 기타 관공리들에게 경고장을 발송하고 부호들에게 독립공채를 판매하였다. 심야에는 대구를 방문하여 한국인이 경영하는 상점 앞과 주요 도로에 일제 물품 구매와 납세를 거부해야 한다는 내용의 문서와 『자유신보』 등 임시정부의 동정을 알리고 워싱턴회의에 맞추어 한국인의 독립 의지를 드러낼 운동을 촉구하는 격문을 살포하였다. 이러한 활동은 이현수가 도피 생활 끝에 1923년 1월 9일 경북 경찰부에 자진 출두하면서 발각되었다. 일제 경찰이 진술을 축소하려는 이현수를 고문하고 그의 가택을 수색하여 발견한 증거품을 바탕으로 모두 42명을 검거할 때 함께 붙잡혔다. 일제 경찰은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대구지방법원 검사국으로 송치하였으나, 증거 불충분으로 1923년 10월 19일 기소유예 처분을 받고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조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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