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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태규

閔太圭

1882. 11. 6 ~ 1968. 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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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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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安東)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안동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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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안동군 예안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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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82년 11월 6일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예안면(禮安面) 동부리(東部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여흥(驪興)이다. 안동군 예안면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안동 최초의 대규모 만세시위는 예안면에서 일어났다. 예안면에 사는 김동택(金東澤)·신응한(申應漢)·이동봉(李東鳳)·이용호(李用鎬) 등은 1919년 3월 3일에 거행된 고종 장례식에 참석하였다가 서울의 만세시위를 목도하였다. 이들이 귀향하여 서울의 만세시위 소식을 전하면서 예안면의 시위 준비가 시작되었다. 예안면장인 신상면(申相冕)은 예안면사무소 숙직실에서 면서기들과 회합하고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거사일은 다음 장날인 3월 17일로 정하였다. 예안면의 유림 지도자인 조수인(趙修仁)을 비롯한 유림과 예안교회(禮安敎會)에서도 만세시위를 준비하였다. 1919년 3월 17일 예안면의 만세시위는 오후 3시 30분 수십 명의 군중이 면사무소 뒤편 선성산(宣城山)에 일본인이 일왕의 탄생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어대전기념비(御大典紀念碑)를 넘어뜨리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작되었다. 이 만세소리와 함께 대기하고 있던 시위대가 일제히 시장으로 행진하였다. 이날 예안시장에 쌀을 사러 갔다가 시위에 적극 참여하였다. 시위대가 예안 순사주재소를 몰려가자 일제 경찰과 군인이 나서 시위에 앞장서던 15명을 체포하였다. 오후 6시 시위대와 함께 주재소 앞에서 구금자의 석방을 요구하였다. 1,500여 명을 넘어선 시위 군중들은 주재소를 둘러싸고 돌과 기왓장을 던지는 등 격렬하게 항쟁하였다. 일제 군경이 폭력적인 진압에 나섰고, 이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붙잡혔다. 1919년 3월 24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항소하였으나, 그 해 4월 17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 당하였다. 이에 다시 “조선 민족의 한 구성원으로서 하나님께 봉축 드리기 위해 만세를 불렀다”고 하며 상고하였으나, 같은 해 5월 19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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